[문화칼럼] 일하는 엄마는 죄인인가?

입력 2010-03-12 10:59:50

내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가끔 대낮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이 들지 않은 층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초인종을 누르지 마시고 살짝, 노크해 주셔요. 아기가 자고 있어요" 혹은, "잠깐. 노크해 주셔요. 아가가 자고 있어요"라는 문구와 함께 기저귀를 찬 아가가 엎드려 있는 귀여운 그림이, 바로 초인종 위에 테이프로 단단히 붙어 있는 복도 층은, 젊은 엄마가 집을 지키고 있어 도둑이 얼씬하지 못하고 피해 갔다는 것이다.

딸은 스물아홉 살에 결혼을 했는데 일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용한 집에 약 지으러 가자고 내가 성화를 낸 지 얼마 안 있어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나는 마침, 『명자』라는 제4시집을 내고, 부칠 봉투를 만든다고 인쇄소에 있을 때였는데, 그 소식을 듣자 걷잡을 수 없는 환희에 가슴이 마구 떨려왔다. 그러면서 순식간에 빨간 사과가 가득 열린 과수원 풍경이 물결치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기뻐서 막 떨고 있다"고 딸에게 문자를 날렸다. 사실 내 시집 『명자』에서는 젊은 여성들의 피폐해진 몸과 불임을 걱정하고 있던 터라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리고 임신한 딸은 다리가 통통 부어 걱정을 했는데, 이듬해 별 탈 없이 순산을 하고, 젖을 먹인다고 여름 석 달을 아기와 엉겨붙어 씨름을 하는 모양이 보기 좋았다. 아기에게 엄마의 젖가슴은 질펀한 갯벌과 다름없는 즐거운 놀이터였다. 연방 배냇짓을 하는 또 하나의 섬세한 거울을 만나 나는 미역국을 끓여주면서 성스러우면서도 조심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딸은 석 달의 짧은 출산 휴가가 끝나자 직장으로 돌아갔는데, 우유를 먹지 않겠다고 도리질하면서 슬프게 우는 아기를 보며, 나는 아기의 건강을 위해 최소 6개월은 모유를 먹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우리 현실을 원망했다. 선진국은 출산 휴가가 일 년인데 말이다.

소현이는 그 사이 8개월이 지났다. 아랫니도 나고, 이유식도 하고, 잘 기어 다닌다. 무엇이든 만지고, 두드리고, 입을 갖다 댄다. 장난감 건반을 눌러놓고는 칭찬해 달라고 자꾸만 돌아본다. 어른들이 사용하는 리모컨을 만지다가 TV를 켜기도 한다. 잼잼도 하고 짝짜꿍도 한다. 손을 내저으며 싫다는 표시도 적극적으로 할 줄 안다. 기어가는 소현이의 목표물은 주로 엄마다. 재빠르게 기어가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엄마 다리를 붙잡고 환하게 올려다본다. 방바닥 장판의 이음새를 자꾸만 손으로 뜯어내려고 하는 것을 보면 꼭 어릴 때 저의 엄마를 그대로 닮았다.

아기는 팔과 다리가 짧아 꼭 귀여운 동물 같다. 아기의 옷과 손수건에 그려진 바둑이와 토끼와 기린과 고양이와 아기곰들이 그대로 친구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아기들은 까르르 웃고, 얼굴이 점차 영리해져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현이 엄마에게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바로 앞 동 애를 봐 주던 아줌마한테 사정이 생겨 소현이를 돌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소현이 외할머니인 내가 서울에 올라왔는데, "소현이를 봐 주겠다"고 분명하게 의사를 밝힐 수가 없는 것이다. 어린이집에는 아직 보내기 어리니, 돌까지만 봐 주겠다고 일단 말을 했다. 나도 더 이상은 자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딸은 그동안 많은 베이비시터 면접도 보았지만 결정을 못 하고 있다. 소현이의 낯가림도 심하지만, 소현이 엄마도 남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 아니다.

오늘은 어린이집 몇 곳을 다녀왔다. 아쉬운 대로 어린이집이 있구나. 이제 선택만이 남았다. 딸은 평가인증을 받은 어린이집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이집은 보육료 절반을 국가에서 보조해 준다고 했다. 하지만 더 나은 시설과, 보육교사들의 처우가 개선되어 만족하며 한 보육사가 오래 한 곳에서 낯익은 아기들을 돌볼 수 있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보육교사 인증제도도 반드시 필요하다. 엄마가 기꺼이 믿고 애기를 맡길 수 있는 곳, 떨어져 있어도 엄마와 아기가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곳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리고 아이에게 죄의식은 가지지 말자"고 나는 딸에겐 듯, 나 자신에겐 듯 말했지만 실은 소현이가 애처로워 쳐다볼 수가 없었다. 부모가 영유아기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안전 애착'이다. 안전 애착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서 안정을 느끼고 정서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딸은 다음 일주일 동안 소현이의 어린이집 적응을 위한 휴가를 낸다고 했다.

박정남 시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