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진검 판매 박정욱 아이스워드 대표

입력 2010-03-11 11:33:05

"역사 깃든 도검…소장 자체로 의미 있어요"

대구 수성3가 롯데캐슬 아파트 맞은편 상가 건물 2층. 겉모습으로는 검도 도장 같은 느낌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별천지'였다. 마치 개인 전시관 같은 분위기랄까. 30㎡ 남짓한 공간의 벽과 진열장을 특이한 전시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도검들, 탄성을 자아내는 단검들에 영화에서나 봄직한 서양의 중세 투구와 갑옷, 방패들이 빽빽했다. 칼집에서 빼 보니 날이 번쩍였다. 잘못 만지면 베일 것 같은 섬뜩함에 순간 아찔했다.

이곳은 아이스워드 대표 박정욱(52)씨의 사무실이자 전시실이다. 박씨는 세계 여러 나라의 진검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사업을 10여년 동안 해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흔치 않은 분야이다 보니 영화사나 방송사에서 곧잘 찾아온다고 한다.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가수 인순이 뮤직비디오 등에 소품으로 활용됐다.

그를 칼의 세계로 이끈 것은 검도였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박씨는 서른살이 넘어 검도에 입문했다. 테니스나 수영 등에 비해 신비로움이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죽도를 10년 정도 만지니까 진검으로 한번 해 보고 싶더라고요. 진검을 구입하려고 알아보니까 국내산은 당시 금액으로 100만원이 훌쩍 넘더군요. 너무 비싸다는 생각에 외국으로 눈을 돌렸죠."

인터넷을 열심히 뒤진 결과 외국산 칼이 품질 대비 가격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때마침 칼이 수입금지 품목에서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확인차 관세청에 전화했더니 도검 수입이 가능하다더군요. 도검 수입을 해보면 괜찮겠다 생각했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의 사무실을 마련한 것이 2000년이다.

그의 사무실에는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도검들이 채워져 있다.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스페인, 체코, 인도 등의 도검과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단검이 전시된 것만 300여종이고 보유하고 있는 것은 500종이 넘는다고 한다. 갑옷과 방패, 헬멧 등도 틈틈이 갖췄다.

고객의 70% 이상은 수도권 사람들. 온라인 판매를 병행해 지방보다 서울에 더 알려져 있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도검의 경우 10만원대부터 1천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 단검은 2만~300만원대, 갑옷은 100만~1천만원대 등이다. 이렇게 비싼 무기를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살까.

"나쁜 용도로 구입하는 손님은 없어요. 주로 수련용이나 소장용으로 사 가죠. 칼도 무기류라 아무에게나 팔지 않아요. 허가 절차가 필요하죠. 칼을 구입하려면 구입신청서와 신분증을 내야 하고 그걸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죠. 경찰서에서 구입자의 이력이나 결격사유를 확인하고 문제가 없으면 허가를 내 줘요. 보통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하죠."

늘 칼을 대하지만 박씨는 지금도 조심스럽다. "한번씩 이곳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 구경하러 와요. 만져본다고 칼을 꺼내들고 휘두를 때면 사실 가슴이 철렁해요. 그 사람은 별 생각 없이 휘둘러 보지만 제 입장에선 한마디로 무섭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눈으로만 보게 하지, 직접 만지게는 안 해요."

수많은 도검들을 관리하느라 손은 상처투성이다. 녹을 방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기름을 발라주는데 그 과정에서 크고 작게 베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베었죠. 진검이 워낙 날카롭잖아요. 이상하게 칼을 계속 닦다 보니까 무딘 칼보다는 날카로운 칼이 더 좋아지더라고요. 날카로운 칼이 오히려 덜 다쳐요."

시작할 때만 해도 칼에 대해 문외한 수준이었던 박씨는 이제 제법 칼 전문가가 됐다. 중국이나 유럽 등지에 수시로 출장을 가고 각종 서적과 인터넷으로 공부한 덕분이다. "나라마다 개성이 있듯 칼에도 그런 색깔이 우러나는 것 같아요. 일본 칼은 전통적이면서 날카로운 맛이 있고, 중국 칼은 수많은 민족이 흥망성쇠를 거듭한 만큼 종류가 정말 다양하죠. 스페인 칼은 굵직하면서도 남성적인 멋이 있는 반면 프랑스 칼은 선이 아름답고 여성적이죠."

그는 세계 각국의 칼 가운데 일본 칼의 우수성을 높게 평가했다. "칼에는 수없이 많은 무늬가 있어요. 표면을 수없이 깎다 보니 자연스레 나타난 거죠. 단단하게 만들려고 계속 단조를 한 결과입니다. 단조를 계속 하면 칼은 강해지는데 깨지기 쉬운 단점이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일본은 특유의 기술인 '접쇠'라는 것을 개발했죠. 쇠를 10~15번 정도 접는 기술인데 칼이 무척 질겨집니다. 접쇠 기술은 우리나라 장인들도 시도한 적이 있지만 제대로 못 하는 고도의 기술입니다. 일본은 칼에 대한 문헌이 풍부한데 우리나라는 문헌을 찾기가 힘들어서 칼의 발전이 더딘 게 아닌가 싶어요."

박씨는 이 일이 천직 같다고 표현했다. 크게 수익이 되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 "도검을 취급하는 일은 한마디로 과거를 간직하는 일인 것 같아요. 과거를 보존하고 지킨다는 느낌이죠.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모두들 거기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지만 칼은 소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고 의미가 있는 일이죠."

박씨의 바람은 두 가지다. 앞으로 칼과 갑옷을 좀 더 다양하게 수집해 도검을 전문으로 하는 큰 전시관을 여는 것, 꼭 구입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구경하러 많이 찾아와 칼에 대한 이해를 넓혔으면 하는 것이다. 053)762-5888.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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