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마음, 그 끝없는 연구 대상

입력 2010-03-11 07:50:05

나는 자주 '마음'이라는 것과 싸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의지와 무관한 마음과 싸운다.

행동해야 할 순간에 주저하는 마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순간에 한 발 물러서는 마음, 가지 말라고 붙잡아야 할 순간에 무기력해지는 마음…. 바로 그 마음이 늘 나의 연구 대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마음을 이렇게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엔 두 마음이 있다. 우주의 흐름을 자연스레 따르는 마음과 그것을 중간에서 가로막는 마음.

사람은 누구나 결심이라는 걸 하며 산다. 자신의 삶에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든, 하루하루를 견디듯 살아가는 사람이든 내일을 계획하고 결심한다. 그런데 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하면 어김없이 마음에서 이런 말들이 들려온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이걸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변화는 두려운 것인데."

이 두려움이 바로 내가 말하는 우주의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매순간 올라오는 의심이 또 그렇다. 어쩌면 의심과 두려움은 새로운 시도를 할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애초에 했던 결심이 무너져버린다면, 그건 결국 마음이 우주의 흐름을 방해한 것이 된다. 의심과 두려움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생각으로만 끝낸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삶은 아주 단순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한다. 그냥 하면 될 것을,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이 핑계를 대고 저 이유를 갖다 붙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는 알고 있다. 사실은 그것이 '두렵다'는 뜻이라는 걸. 내가 도망칠 무언가를 애써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단순해지려고 애쓴다. '그냥 해보자, 그냥 하자.' 주문을 걸듯 내게 이야기한다. 그것이 불안하고 두렵고 때때로 내 일상을 힘들고 불편하게 만든다고 해도 말이다. 우주의 자연스런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두려워서, 불편해서 피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히 받아들인다는 뜻일 것이다.

감사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잊는 순간, 사람은 두려워지고 복잡해진다. 이유가 많아지고 핑계가 늘어난다.

'바로 지금이야'하는 마음속의 울림이 있거든, 그것이 좀 불편하고 귀찮아도 감사히 받아들여야겠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삶을 위해서.

전문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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