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말 한마디와 돌고 도는 세상

입력 2010-03-09 07:59:28

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냈다. 교차로를 지나자마자 앞차가 급하게 서는 바람에 뒤범퍼에 부딪히고 말았다. 차가 막힐까봐 앞차 운전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20여m 앞쪽에 차를 세운 뒤 곧장 뛰어갔다. 행여 다친 곳은 없는지 물어보고 얼마나 부서졌는지도 확인했다. 다행히 눈에 띄는 사고 흔적은 없었다. 겉으로 봐서는 모르니 나중에 다시 꼼꼼히 확인해보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불안했다. 몇 해 전 친구가 비슷한 교통사고를 냈다가 된통 당한 이야기가 떠올라서다. 접촉사고가 나면서 손톱만큼 페인트가 묻었는데, 이튿날 피해차량 운전자가 전화를 걸어와서 범퍼를 교체하겠다고 했단다. 어이가 없어진 친구가 따졌지만 막무가내였다. 상대방은 "보험처리하면 서로 골치 아프니까 30만 원만 보내라. 그 정도면 많이 봐준거다"라고 했다. 그 정도 사고에 범퍼를 교체하겠다는 것도 황당한데 결국 목적이 돈을 받아내겠다는 수작임을 알게 된 친구는 화를 내면서 "수리할테면 마음대로 하라. 대신 당신한테는 10원도 못 준다. 보험처리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찌됐건 정차한 차를 뒤에서 부딪혔으니 친구 과실은 100%. 렌터카 비용까지 포함해서 수십만 원을 물어내야 했다. 이런 사연을 들었으니 사고를 낸 입장에서 내심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사고 당일도 연락이 없었고, 이튿날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이틀 뒤에 사고를 당한 사람이라면서 전화가 걸려왔다. 얼마나 꼼꼼히 따져보고 살펴봤으면 이제서야 전화를 하나 싶었다. "전화가 늦어서 걱정하셨죠. 제가 어제 출장이라서 확인을 못했습니다. 오늘 차를 다시 살펴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더군요.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쪽 차는 괜찮습니까?" 고마움에 감격해서 전화기를 들고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저 보상을 해주고 말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배려심에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전화를 끊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사고를 당했지만 피해가 없다면 알려주는 게 사람 사는 도리이자 인간에 대한 배려다. 그런데 이 일이 감격스러울 만큼 고마운 일이 됐다.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뜻이리라. 필자도 마찬가지다. 끼어드는 차를 보면 참지 못해서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마구 깜빡거리며 아이들이 타고 있는데도 욕지거리를 해댔다. "아빠는 운전만 하면 화를 내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모르면 가만히 있어. 내가 아니고 저 차가 잘못한 거야. 내가 피해를 봤는데 화 내는 게 당연하지"라고 되받아치곤 했다. 내가 끼어들 때 뒤차가 경적을 울리면 "거 참 되게 신경질 부리네. 서로 같이 좀 가면 어때서?"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화 한 통을 받고 그만큼 고마웠던 이유는 각박한 세상 때문이 아니었다.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못나고 여유가 없어서였다. 취재 중 만난 한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잘났다고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함께 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돌고 돈다. 앞서 친구에게 화를 내며 돈을 받아내려 했던 그 사람, 혹시 내가 전조등을 깜빡거리고 경적을 울려대는 바람에 잔뜩 짜증이 난 상태에서 친구 차와 사고가 났던 것은 아닐까? 반대로 내게 오히려 괜찮으냐고 물어왔던 그 사람은 누군가의 배려 덕분에 기분 좋은 운전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참 오묘하다. 지금 누군가에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돌고 돌아 100배쯤 커져 돌아올 수도 있으리라.

김수용 사회1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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