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세계 넓어지고 건강 좋아졌어요"
4월처럼 포근했던 지난달 24일 헐티재(경북 청도)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아직 겨울색을 벗지 못한 산에는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성미 급한 봄 신령은 일찍감치 내려와 떠날 준비가 덜 된 겨울에게 자리를 비켜달라 재촉하고 있었다. 봄 기운 따라 숨가쁘게 헐티재를 넘은 뒤 지슬 방향으로 조금만 달리면 한국화가 윤종호(59)씨의 전원주택이 자리잡은 지슬1리가 나온다.
마을 입구에는 아름드리 고목나무 대여섯 그루가 서 있다.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수호신들이다. 윤 작가의 집은 목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마을 길과 접해 있으며 사방이 탁 틔여 막힘이 없다. 집 주변은 온통 과수원이다. 봄이 되면 흐드러지게 피는 꽃으로 눈이 부실 것이다.
넓지 않은 마당에는 잔디와 고운 자갈이 곱게 깔려 있고 조그마한 설치 작품이 놓여 있다. 명제는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수명이 다해 버려진 농기구를 윤 작가가 작품으로 환생시킨 뒤 멋진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잔디와 자갈의 경계에는 수석과 분재가 도열하 듯 놓여져 있다. 20여년 동안 전국을 다니며 윤 작가가 수집한 것들이다. 희귀 난도 많이 모았지만 하루 밤 관리 소홀로 대부분 잃어버렸다고 한다.
H빔(철골)으로 지은 2층 남향 집은 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고 실용적 배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1층은 작업실과 전시실, 2층은 주거공간이다. 뜰에 서면 잠시 머물다 가는 따뜻한 햇볕과 바람을 만날 수 있다. 때이른 봄볕에 백구 두 마리가 대낮부터 잠을 청하고 있다.
전시실에는 100호 이상 대작 10여점이 걸려 있다. 특히 폭포가 등장한 그림이 많다. 한국화는 물, 돌, 나무가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물(폭포)이 있는 그림을 많이 그린다는 것.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금강산 팔담을 비롯해 해금강, 월출산, 중국 장가계의 풍광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묵 냄새 물씬 풍기는 작업실에는 작가의 고뇌와 노력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완성된 작품과 작업 중인 작품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여기서 윤 작가는 낮에는 자연을 벗삼아, 밤에는 별을 보며 작업을 한다. 2층에 올라서면 시원스런 전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봄을 준비하는 농촌 풍경 속에는 지슬1리 주민들의 삶이 녹아 있다.
윤 작가가 물 맑고 공기 좋은 이 곳에 터를 잡은 것은 2005년이다. 작업실이 딸린 주택(대구 동인동)에서 생활하다 조용히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도심을 떠났다. "제가 술을 좋아합니다. 집이 시내에 있다 보니 늘 약속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건강도 나빠졌습니다. 언젠가는 전원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더 미루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결심했습니다."
적당한 곳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닌 그는 처음 달성군 가창면 화상경마장 인근 집을 낙점한 뒤 계약까지 했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둘러본다는 생각으로 우연찮게 지슬1리를 방문한 뒤 마음이 확 바뀌었다. 접근성도 나쁘지 않고 전형적인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인상이 조용하고 아직 때묻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시골 정취를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 계약했습니다."
260여㎡(80여평)의 농가를 구입한 윤 작가는 한동안 그대로 살다 정성 들여 지금의 집을 지었다. 직접 인테리어 도면을 그려 단장했기 때문에 집 구석구석에 윤 작가의 손때가 묻어 있다.
시골 생활은 하는 것 없이도 늘 바쁘다.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생긴다. 바쁜 와중에 그는 전원생활이 주는 혜택을 만끽하고 산다. 아침이 되면 뒷산으로 산책을 나간다. 봄에는 진달래, 벚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으로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이루는 곳이다.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올라올 때면 늘 그랬듯이 그는 뒷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갈 것이다.
집을 구입하면서 함께 산 텃밭에서는 각종 채소를 기른다. 텃밭 한쪽에 있는 20여그루 감나무에서는 지난해 150상자의 감도 수확했다. 인건비를 빼면 남는 게 없지만 수확의 기쁨과 시골 사는 재미를 톡톡히 느끼게 하는 고마운 존재다. 축복은 또 있다. 실경산수를 그리는 한국화가에게 전원생활은 작품의 깊이를 더해 준다. "봄이면 봄대로, 여름이면 여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한 번 들어오면 나가기 싫은 곳입니다. 자연을 접하고 산 지난 5년 동안 저의 작품 세계는 더 넓어졌습니다. 건강도 다시 좋아졌습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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