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장 기업인들 '9시 신데렐라 병'

입력 2010-02-25 11:01:15

업무 차 서울 출장이 잦은 대경창투 신장철 대표는 '9시 신데렐라 병(病)'이 있다. 비즈니스 특성상 서울에서 저녁 술자리가 많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시계 보는 일이 잦아진다. 술이 약해서 그런 건 아니다.

신데렐라도 아닌 그가 오후 9시만 되면 불안해지는 이유는 뭘까?

신 대표는 병의 원인을 'KTX 막차 시간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대구로 출발하는 KTX 막차 시간은 오후 10시 30분. "서울 강남에서 술자리가 많은데 시계 바늘이 9시를 가리키면 자리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아무리 빨리 가도 서울역까지 50분가량은 걸려요. 이때를 놓치면 그날 집에 가는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호텔비가 20만~30만원 드는 건 둘째 치고 다음날 일정에도 차질이 많아요."

외국에서 중요한 바이어가 방문할 때는 신경이 더욱 곤두선다. 신 대표는 얼마 전 낭패 본 일이 있다. "유럽의 한 기업인을 인천국제공항에서 마중한 적이 있어요. 비행기 도착 시각이 오후 8시여서 대구 집에서 손님을 맞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자택 초대로 인상을 남기려 했죠.

하지만 비행기는 예정보다 10분이나 연착했고, 출국 수속도 더뎌지면서 외국 손님은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시계는 벌써 9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어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서울역으로 향하는 리무진을 부리나케 탔어요. 하지만 간발의 차로 KTX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 대표는 "무리해서라도 외국 손님을 집에서 대접하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왔는데 다음날 그 외국인의 반응은 '다시는 대구에 안 오겠다'는 것이었다"며 "이래서 지방 기업인들이 어디 기업 활동 제대로 하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신 대표를 더욱 '열'받게 한 것은 또 있다. 그 일이 있은 후 KTX 열차 시간표를 확인하다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KTX 막차가 11시 11분에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서울 사람들은 대구에서 편안하게 볼일 다보고 집에 갈 수 있는데, 대구 사람은 중간에 도망치듯 일어서거나 객지에서 하룻밤 묵느라 웃돈까지 써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세종시 사태로 가뜩이나 지역에 기업 발길이 뚝 끊겼는데 KTX까지 차별하니 어느 기업인이 이쪽을 쳐다보겠어요?"

그는 주변의 많은 기업인들도 같은 처지라고 했다. "대구행 KTX 막차 시간을 서울행과 똑같이 해달라고 한국철도공사에 항의했더니 비슷한 불편신고가 많이 접수되고 있지만 안전운행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막차 시간 연장은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하더군요. 서울은 괜찮고 대구는 왜 안 되는지 설명도 없어요."

신 대표는 "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지역민의 요구를 묵살하는 이유로 서울 사람들은 KTX를 드는데 이런 실정을 아는지 모르겠다"며 "국토 균형발전을 말로만 외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