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이 화폐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지 8개월여가 지났다. 이미 전국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의 수는 2억장을 넘어설 정도로 유통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현금인출기 보급이 늦어지면서 여전히 사용이 불편한데다 씀씀이를 키운다는 원성도 적지 않다. 5만원권을 찍어내는 조폐공사는 적자 위기를 면치 못하고 있다.
◆5만원권 얼마나 풀렸나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에 따르면 대구경북에 순발행된 5만원권 화폐는 23일 현재 1천607만장, 금액으로는 8천36억1천만원에 이른다. 특히 설 명절로 신권 수요가 급증했던 이달 들어 5만원권 화폐는 377만7천140장, 1천888억5천700만원이 시중에 풀렸다. 이는 지역의 전체 화폐 발행액 5천624억원 중 33.6%를 차지했다. 1만원권은 3천398억원이 발행돼 60.4%를 차지했으며 5천원권은 3.3%(183억원), 1천원권은 2.7%(154억원)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6월 23일 발행돼 지난 1월 말 현재 전국에 유통되는 5만원권은 2억1천205만2천장으로 전체 지폐 40억1천만 장의 5.3%에 이른다. 이는 1억9천978만장이 풀린 5천원권(5.0%)보다 0.3% 포인트 많은 수치다. 1만원권이 22억1천465만장(55.2%)으로 가장 많고, 1천원권이 11억8천950만장(29.7%)으로 뒤를 이었다. 금액으로 따지면 5만원권의 발행잔액은 10조6천26억원으로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서 전체 은행권 발행잔액(34조9천510억원)의 30.3%를 차지했다. 덕분에 1만원권의 발행잔액 비중은 지난해 6월 말 84.5%에서 올 1월에는 63.4%로 내려갔다.
◆지갑 안에 잠든 5만원권
5만원권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시선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선뜻 꺼내 쓰기는 쉽지 않다. 직장인 김영호(44·북구 칠성동)씨는 상점에서 5만원권을 내고 담배를 살 때는 늘 두갑을 구입한다.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담배 한갑 사고 4만7천500원을 거스름돈으로 받기는 머쓱한 탓이다. 택시 요금을 낼 때도 미리 5만원권이라고 선수를 친다. 김씨는 "내야 할 돈보다 거스름돈이 더 많은 경우에는 주고받는 사람 모두 부담스러워한다"며 "이 때문에 5만원권은 늘 지갑 속에서 잠자는 경우가 많다"고 불평했다.
은행에서 CD기나 ATM기기를 이용하기도 아직 불편하다. 아직 5만원권 사용이 가능한 현금인출기 보급이 더딘 탓이다. 대구은행에 따르면 대구에 보급된 대구은행 현금인출기 1천163대 중 5만원권 사용이 가능한 기기는 140대에 불과하다. 대구은행은 연말까지 5만원권 사용이 가능한 현금인출기 250대를 확대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부품 일부를 교체하는 대신 기기 자체를 바꾸고 있어 완전 도입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거보다 씀씀이가 커졌다는 불평도 나온다. 5만원권 지폐 한장이 1만원짜리 다섯장을 쓰는 것보다 돈을 쓰는 느낌이 가볍다는 것. 자연스럽게 지갑에 들고 다니는 현금도 많아지고 세뱃돈이나 축의금 등 경조사비 역시 오를 태세다. 직장인 최모(36)씨는 "축의금을 낼 때도 1만원권 다섯장보다 5만원짜리를 넣는 경우가 더 많다"며 "설 세뱃돈도 보통 3만~4만원을 건넸지만 이번에는 5만원짜리로 줬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대구경북본부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현재 물가가 2%대로 안정돼 있고, 발행 초기여서 물가가 영향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며 "경기 회복이 빨라질수록 5만원권의 사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폐공사는 울상
5만원권 발행의 유탄을 맞은 곳은 조폐공사다. 고액권 발행으로 전체 지폐 발행량이 크게 줄고, 10만원권 수표의 수요도 급감했기 때문. 조폐공사에 따르면 5만원권 발행 이후 연간 10억장 수준을 유지하던 지폐발행량은 5억장으로 줄었다. 주요 수입원이던 10만원권 자기앞수표 발행도 30% 가까이 감소했다. 5만원권 제조원가가 비싼 점도 부담이다. 띠형 홀로그램과 은선을 넣고 커팅을 하기 때문에 장당 210원은 받아야 수지가 맞다는 것. 그러나 한은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185원으로 정하면서 적자가 가중되고 있다는 게 조폐공사의 설명이다. 조폐공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3천530억원 수준, 영업이익은 2008년 115억원의 절반 수준인 65억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조폐공사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전용학 한국조폐공사 사장은 최근 "경영수지를 맞추기 위해 지폐 발주기관인 한국은행에 5만원권, 1만원권의 단가를 올려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공기업 선진화, 한은 경영수지 악화 등으로 불가능했다"며 "전자화폐, 해외수출 등을 통해 경영수지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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