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준성이는 워낙 먹성이 좋아 밥 한 그릇을 먹어치운 뒤에도 아쉬워서 숟가락을 쉽사리 놓지 못한다. 밥상을 치우기 무섭게 바로 간식을 입에 집어넣는다. 가급적이면 과자류를 집에 두지 않지만 학원이나 유치원에서 주는 간식까지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비만은 아니다. 또래들보다 덩치가 워낙 커서 2, 3학년으로 오해를 받지만 몸무게뿐 아니라 키도 크기 때문에 볼살이 통통한 정도. 하지만 준성이 부모는 노심초사다. 자칫 소아비만으로 진행되면 만성질환이 따르고, 특히 성조숙증을 보일까봐 염려스럽다. 성조숙증이 생기면 한창 키가 클 나이에 성장이 그만큼 빨리 멈춰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되는 혜주(14)는 고도 비만 판정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워낙 뚱뚱했지만 여느 아이들처럼 한창 키가 클 때면 살이 빠질 것으로 기대했다. 키가 자라기는 했지만 그만큼 몸무게도 불어났다. 한두 차례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식욕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초경이 시작되며 가슴도 봉긋해지기 시작했다. 5학년 때 153㎝로 키가 자랐지만 자라는 속도는 더뎌졌다. 최근 들어 부쩍 신경질이 늘었고 부모와의 말다툼도 잦아지면서 부모도 적극적인 다이어트를 권하지 못한다. 맞벌이를 하는 탓에 제때 식사를 챙겨주지 못하고 늘 '정크 푸드'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벌어진 일. 병원에 가보자고 해도 "내가 병에 걸렸냐?"며 신경질부터 낸다.
◆갈수록 일찍 나타나는 초경
뚱뚱한 자녀를 둔 부모들은 갖가지 질병에 앞서 성조숙증 때문에 고민이 많다. 경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고철우 교수는 "사춘기 시작 연령과 사춘기의 성(性) 성숙도 진행속도는 인종, 유전적 요인, 사회·경제수준, 영양상태 및 보건수준 등에 의해 영향을 받는데, 서양처럼 우리나라도 청소년기의 평균 신장 및 체중이 세대를 거듭하며 증가함과 동시에 성의 성숙시기도 점차 빨라진다"고 했다.
요즘 초·중·고교 여학생들의 초경(初經)은 평균 11.98세 때 경험하고, 초경 연령은 어머니 세대보다 2.4세가량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보건교육포럼이 한국갤럽의 자회사인 ㈜베스트사이트와 함께 전국 초교(4~6학년), 중학교(1~3학년), 고교(1~2학년) 여학생 3천307명과 이들의 어머니 2천76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보건교육포럼은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초경 연령은 1970년대 14.4세, 1998년 13.5세, 1999년 12.8세, 2005년 12.25세 등"이라며 "여학생 초경의 저연령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06년 대한소아내분비학회지 자료에서도 이런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1900~1909년 출생자의 경우, 15~16세까지 약 50%가 초경을 경험했다. 하지만 1980~1989년 출생자의 경우, 13~14세까지 약 50%가 초경을 경험했다. 80년 사이에 평균 초경연령이 2년가량 빨라진 셈. 최근 20여년간 초경시기 비교에서도 비슷한 추세를 볼 수 있다. 1980~1983년 출생 여대생의 평균 초경연령은 12.4세이고, 1990년대 이후 출생인 초·중·고교생은 12.0세로 나타났다. 서양의 경우, 지난 150년간 매 10년마다 2, 3개월씩 초경이 빨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 및 유럽의 초경연령은 19세기 초만 해도 17세였으나 1877년에 14.7세로 감소했고 최근 12.2~12.9세 정도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초경연령이 빨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여자의 경우 몸무게 40㎏ 전후에 초경을 하고, 남자는 47㎏ 전후에 몽정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무게가 성장과 2차 성징, 사춘기 시작에선 중요한 기준이 된다.
◆비만과 성조숙증의 상관 관계는?
그만큼 체격 발달이 좋은 아이는 일찍 사춘기에 접어든다고 볼 수 있다. 고철우 교수는 "체중, 지방축적량, 또는 지방과 근육의 비율이 일정 한계에 도달하면 이것이 사춘기를 시작시킨다"며 "특히 비만이 있을 때 지방세포에서 만들어지는 렙틴이 사춘기를 시작시키는 역할을 하며, 환경호르몬 등도 사춘기를 일찍 시작하게 만든다는 보고가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부모들의 고민은 시작된다. 우리 아이가 뚱뚱한 편인데 너무 빨리 사춘기가 오면 성장이 멈추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하지만 비만이 곧 성조숙증을 일으키느냐는 물음에 대해 아직 "100% 그렇다"고 답할 단계는 아니다. 고 교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양상태가 좋은 아이들이 쉽게 비만해질 수 있고, 이는 곧 이른 사춘기를 가져올 수 있다"며 "하지만 이른 사춘기와 성조숙증은 다르며, 성장이 멈추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최근 우리나라 소아청소년 10만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 시작(유방발달)은 약 6개월 정도 빨라졌지만 그와 동시에 최종 성인키에 도달하는 시기도 6개월 정도 빨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그만큼 빨리 성장이 시작되고 빨리 끝난다는 뜻. 비록 사춘기의 시작과 초경이 빨라지기는 했으나 최종 성인키의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사춘기가 일찍 시작하지만 성조숙증 때 나타나는 성장판의 조기 폐쇄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른 초경과 키는 무관하다는 조사 결과는 여러 차례 보고되고 있다.
◆진성 성조숙증은 전문가 진단 필요
하지만 이 결과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만 때문에 사춘기가 일찍 오는 경우와 '진성 성조숙증'은 경과가 다르다는 점. 비만으로 인해 가슴이 발달하고 초경이 일찍 시작됐다고 해서 바로 성장판이 닫히는 것으로 염려할 필요는 없지만 실제 진성 성조숙증으로 판명됐다면 전문가 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성 성조숙증은 이른 나이에 성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돼 남아는 만 9세 이전에 고환이 커지고, 여아는 만 8세 이전에 유방이 커지는 증상을 보이는 것을 일컫는다. 성조숙증은 여아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젖가슴이 발달하는 신체변화가 뚜렷해 남아 성조숙증보다 발견이 쉽다.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평균 신장은 남아 120㎝, 여아 119㎝인데, 부모의 키가 평균치 이하인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키가 또래보다 7, 8㎝ 이상 너무 크다면 성조숙증을 의심해야 한다.
치료는 성장선 자극호르몬 분비를 억제해 사춘기발달과 성장 속도를 나이에 맞도록 조절하는 호르몬 제제를 한달에 한번 주사해 성장판이 일찍 닫히는 것을 막아야 한다. 주사제는 엄격히 말하면 호르몬 주사는 아니다. 고철우 교수는 "성 호르몬이 분비돼 사춘기를 활성화시키는 뇌 부위에 작용해야 성조숙증이 나타나는데, 주사제는 이런 작용을 막는 역할을 한다"며 "아주 특수한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특정 부위에만 작용해서 부작용은 거의 없다"고 했다. 실제 이 치료제는 의료계에서 사용된 지 20년이 넘었으며, 월경 과다 및 방광암 치료제로도 쓰인다. 다만 약을 쓰는 동안 골밀도가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청소년기에는 별 문제가 없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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