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대구과학대학 캠퍼스. 말쑥한 차림의 노신사가 며느리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연방 웃음꽃을 피웠다. 노신사는 78세의 김광순씨. 이 대학 의료복지과 만학도인 그가 오늘 졸업하는 날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다니…."김광순씨는 감격에 젖었다. 그의 늦깎이 학업은 6·25전쟁에서 비롯됐다. 고교 1학년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전쟁통에 남은 건 가난뿐, 학비는 엄두도 못냈다.
젊어서 못 배운 것이 평생 한이 될 줄은 몰랐다. 학업을 그만둔 지 57년째인 2007년, 백발 노장은 세월을 마다하고 용기를 냈다. 구미 방송통신고등학교에 편입해 졸업하고 이듬해인 2008년 내친김에 대학진학을 결심했다.
"여러 곳을 헤매다 대구과학대학을 직접 찾아 교수님께 무작정 매달렸지요. "그는 우성진 교수(의료복지과 학과장)의 도움으로 제2의 삶이 시작됐다.
군위군 소보면 시골집에서 대구 태전동 학교까지 통학했다. 집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소보면에 와서 다시 버스로 군위 읍내까지 나왔다. 군위에서 다시 시외버스로 학교에 오기까지는 두 시간이나 걸렸다. 짬을 내 농사일을 하며 2년을 이렇게 다녔다. 늙어서 웬 고생인가 했는데 언제부턴가 원수같은 고혈압이 싹 도망갔다.
재학 중에는 학생들 사이에 '왕오빠'로 통했다. 손자손녀뻘 되는 학생들과 친해지기 위해 MT 등 학과 행사는 죄다 쫓아 다녔다. 때로는 학생들이 아침 인사를 잘 받아주지 않을 때는 서운했다. 점심 같이 먹자고 했는데 약속있다고 손사래칠 때는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늙은이를 '왕따'시키지 않은 학생들이 너무 고마웠다.
재학 중에는 60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해 12명의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했다. 고령의 나이에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딴 그는 이날 덤으로 총장상도 탔다. 이제는 고향에서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며 지낼 예정이다. 아들 하영씨가 운영하는 백송노인주간보호센터에서 일하기로 했다.
교정을 떠나며 그는 교수님께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했다."제가 다시 학교에 찾아와 몰래 청강하더라도 부디 허락해 주세요." 교수님은 답했다. " 언제든지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명예 학생으로 모시겠습니다." 사진·글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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