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중국 설 한국 설

입력 2010-02-13 07:00:00

중국이 '공한증(恐韓症)'까지 들먹이며 주눅 들었던 한국 축구에 신바람 나는 3대 0의 대승을 거두면서 대륙 전체가 들썩인단다. 21세기는 중국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서비스'지식 산업도 중국을 두고는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중국인들의 풍습에 따라 중국의 명절이 지구촌의 휴가 문화에 끼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춘절(春節'우리의 설)은 대표적인 중국의 명절. 섣달 그믐날 밤 중국인들은 빨간 종이에 액운을 쫓는 글씨를 써서 붙이고 폭죽을 터뜨리며 새해를 맞는 전통을 아직도 갖고 있다. 이런 풍습은 중국인들이 진출한 세계 곳곳에서도 비슷하게 목격된다. 춘절 축제 때 영국 런던의 중국인가(中國人街)에서는 영국 왕족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찰스 황태자도 거리 축제에 참가할 정도다. 재미 중국인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의식한 뉴욕의 주지사는 2월 5일을 '뉴욕의 음력 설'로 정했다. 전통적으로 화교세가 강한 동남아 역시 춘절에는 상가가 텅텅 비어 경제 활동이 마비될 정도이다. 통상 춘절부터 우리의 정월대보름에 해당하는 원소절(元宵節)까지 보름 정도 휴가를 즐기기 때문이다.

중국이 설을 실질적인 최대 명절로 맞이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의 설은 수난을 겪어 왔다. 해방 이후 정부가 나서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고 부르며 3일간 연휴를 갖게 하고 설날은 구정(舊正)으로 밀어냈다.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를 외면할 수가 없었는지 1985년부터 설날을 '민속의 날'로 제정해 이날 하루만 쉬도록 했다. 그러다가 1989년 '설날'로 이름을 바꿨고 설 전날부터 3일간 연휴를 실시했다.

이중과세(二重過歲'설을 두번 쇠는 것)의 폐단을 문제 삼아 우리의 최대 명절을 없애려 했지만 결국 국민들의 절대적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숱한 혼란만 남긴 채 40년 만에 환원시킨 셈이다.

14일은 설날이 제 이름을 찾은 지 21년째 되는 날이다. 중국의 막대한 인구와 국력 덕분에 춘절은 이제 지구촌의 명절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의 설날이라고 해서 이런 대열에 합류하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은 비록 춘절로 인해 더부살이를 하는 형편이지만 몇십 년 후 한국의 '설날'로 인해 중국의 춘절이 기억되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란 희망을 가져본다. 자녀들의 세배를 받는 자리에서 '그날을 위해 노력하자'는 덕담을 건네면 너무 진부할까?

최정암 동부지역본부장 jeongam.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