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알심 대신 국수…팥에서 건강만 뽑아 낸다
옷자락 사이로 칼바람이 스며든다.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몸과 마음은 겨울. 이럴 땐 뜨끈한 국물로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싶다. 남은 겨울도 잘 살아내자고 말이다.
'덕마니 팥국수'집을 찾았다. 팥을 오랫동안 삶아낸 국물은 구수하고 담백해 팥을 싫어하는 사람에게조차 중독성이 있는 집이다.
팥은 곡류 중 비타민 B₁이 가장 많다. 비타민 B₁은 탄수화물 대사에 필요한 성분으로, 부족하면 식욕부진, 피로감, 수면장애, 기억감퇴 등의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당뇨병에도 좋고 이뇨작용도 촉진해 예로부터 서민들에게 사랑받아온 잡곡이다.
'덕마니 팥국수'에선 '전라도식 팥죽'을 맛볼 수 있다. 경상도에선 팥죽에 새알심을 넣지만 전라도 사람들은 팥죽에 새알심 대신 국수를 넣어 먹는다. 조수환 사장은 선친 고향의 별미인 전라도 팥국수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팥국수는 간단해보이지만 실은 만만치 않은 음식이다. 팥은 단단해 삶기 어려운 곡물이다. 그래서 삶을 때 소다를 넣는 집도 꽤 있다. 하지만 이 식당은 팥을 8시간 이상 삶아 국물을 낸다. 물론 국내산 팥이다. 팥은 예민한 곡물이라, 일반 곡물보다 열 배의 속도로 상한다. 미리 만들어둘 수 없는 이유다. 여기엔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식탁에 놓여있는 소금과 설탕을 입맛에 맞게 추가하면 된다.
팥국물을 낸 후 여기에 일반 국수를 넣으면 국수가 금세 퍼지기 일쑤. 그래서 주문 받은 후 즉석에서 국수를 뽑아내야 한다. 조 사장은 "3년간 팥에 열정을 쏟아붓지 않는 이상 이 국물을 뽑아낼 수 없다"고 단언할 만큼 자신이 있다.
건축설계사였던 조 사장은 음식에 관심이 많아 30대 후반에 과감히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음식 아이템을 찾기 위해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맛집을 찾아 헤맸다. '국수'라는 아이템을 정한 후 유명하다는 전국의 국수집 72곳을 찾아다녔다. 맛은 좋았지만 화학조미료에 민감한 아내의 입에 혓바늘이 잠잠할 날이 없었다. "그 후로 주방을 유심히 살폈죠. 다들 화학조미료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조미료 없는 국수집'을 하면 대한민국 1등이 되겠다 싶었죠."
그렇게 국수집을 연 후 수성구 범어동에서 2년 동안 국수집을 운영하다 2년 전 시내로 나왔다. 특별 메뉴로 팔던 팥국수를 주메뉴로 삼았다. 그 후로 음식에 대한 연구는 계속됐다. 조 사장은 손에서 책을 놓는 날이 없다.
"화학조미료 없이 맛을 내는 방법이 무엇일까, 조선시대 조상들은 어떻게 맛을 냈을까 고심했어요. 결론은 '소금'이었죠. 정제염이 아닌, 천일염을 찾아 헤맨 끝에 맛을 낼 수 있었어요. 전통 방식으로 만든 소금은 단맛이 나거든요. 그 후로 조미료 없이도 맛을 낼 수 있었어요."
아예 간판에다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조 사장은 화학조미료에 한해선 아주 깐깐하다. 국수집에서 쓰는 밀가루 반죽에 함유된 코팅제와 방부제도 거슬려 국수를 매장에서 직접 뽑는다. 김치, 깍두기, 면반죽 등 매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은 직접 만든다. 이 집 깍두기도 별미다. 맛의 비결은 역시 '소금'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술, 음료수, 커피 등 몸에 좋지 않은 먹을거리는 팔지 않는다. 물도 오가피를 닳여 낸다.
그의 건강식에 대한 집착은 18년간 당뇨를 앓다 돌아가신 누님에 대한 기억과 닿아있다. 그래서 암 환자들도 자주 찾아오고 깍두기를 주문해 가기도 한다.
그는 팥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최근엔 8개월 연구 끝에 팥양갱 개발에 성공했다. 순수 100% 팥으로만 만들어, 푸딩보다 단단하고 일반 양갱보단 부드럽다. 설탕맛 대신 팥 고유의 구수한 맛이 잃었던 미각을 깨운다. 오랜 연구 끝에 팥가루도 만들었다. 수분함량이 2%대라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데다 물만 부으면 팥죽이나 팥국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푸딩과 약밥도 매장에서 판매한다. 약밥에는 캐러멜 색소를 사용하지 않는다.
팥을 믿고 먹을 만한 곳은 많지 않다. 시중의 팥은 정체불명의 팥을 상온 보관 가능할 정도로 많은 설탕과 보존제를 첨가해 유통시키기 때문이다. 덕마니 팥국수가 더욱 반가운 이유다.
조 사장의 꿈은 원대하다. 2천개의 매장을 거느린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를 만들 계획이다. 화학조미료 없는 건강한 식당으로 말이다. 천일염 유통망을 만들어 서민들도 좋은 소금을 싸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다. 이 꿈을 위한 실험이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
팥국수 5천원, 팥죽 6천원, 잣국수 7천원, 팥양갱조각 2천원, 팥푸딩 3천원. 일요일은 쉰다. 053)744-5191.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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