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나는 단독주택을 구하려고 친구와 함께 경북대학교 부근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직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지 않아 건축 연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주택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린 자연스럽게 집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저 집은 70년대 중반에 지은 거야. 당시 붉은 벽돌로 반양옥을 짓는 게 유행이었잖아? 외벽에 타일을 붙인 2층집은 80년대 초반 것이야. 아, 80년대 중반부터는 타일을 없애고 다시 붉은 벽돌을 노출시켰는데 이전과는 벽돌 색이 달라졌어."
마치 경주 석탑의 양식을 보면서 축조의 시대를 구분하듯 집의 모양으로 연대를 거슬러가는 일은 꽤나 흥미로웠다. 학교 인근이어서 옛 주택들은 요즘 지은 원룸형 공동주택과 어울려 썩 다채로운 공간을 빚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 정문 바로 건너는 재개발 예정지여서 수년 안에 옛 주택들이 사라지고 대신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수성구 파동만 해도 수년 전까지는 저층아파트가 서너 군데 박혀 있을 뿐 죄다 빌라거나 단독주택만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곳곳에 아파트를 짓느라 주택을 허물고 있다. 아파트에 살기 싫어 파동까지 밀려온 나로서는, 나중에 파동 대부분을 아파트로 재건축하겠다는 도시계획서를 접하고서 아연한 지경이 되었다. 소방도로를 끼고 있는 주택단지를 굳이 허물어서 대형 아파트로 대체하겠다는 까닭을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좁은 골목에 있는 주택이면 시가 나서서 재개발을 추진해야겠지만 이미 소방도로를 끼고 있는 주택단지는 개인의 취향으로 자유롭게 형성되는 것이 당연히 바람직하다.
도시계획에 대한 불만은 다시 파동 이야기를 꺼내게 한다. 도로 하나를 따라가며 선박(船舶)처럼 길쭉하게 생긴 파동은, 내가 보기에 참 아름답고 한가한 마을인데, 요즘 동네 한가운데로 50m나 되는 높이의 거대한 교각을 세우고 있다. 대구 4차 순환도로를 건설하는 현장이다. 50m 높이의 고가도로가 선박처럼 생긴 동네를 쪼개고 지나가는 것에 대해 시는 지형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답변한다. 하지만 동네사람으로서는 정말 다른 방도가 없었는지, 토목공학적으로 불가피했는지, 예산 때문에 그러는지, 순환선을 위해 단지 이 동네를 희생시키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개인이 시와 맞설 만한 정보도, 지식도 없을뿐더러 다들 생활에 바쁘기 때문에 어쩌지를 못한다. 몇 년 뒤 순환도로가 완성되면 자동차의 소음이 양쪽 산에 부딪혀 협곡 같은 파동으로 고스란히 쏟아질 텐데, 벌써 귀가 멍멍해지는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 할 것 없이 큰 규모의 도시 디자인이 한창이다. 기존 도로에 다른 멋을 내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조정하고, 대단위 이전(移轉) 용지의 활용과 도심 재개발에 주력한다. MB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청계천 효과'가 각 도시로 번지고 있다. 자치단체장들은 뉴타운 건설붐과 발맞춰, 이를 가장 먼저 손꼽는 사업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자치단체장의 업적 가운데 눈에 띌 만한 것으로는 건설만큼 좋은 분야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다급한 건설이 시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금번에 동대구로를 생태도로로 개선한다는 기사를 보면서 나는 또 걱정스럽다. 새로 디자인하겠다는 동대구로는 동대구역을 가운데 두고, 파티마병원에서부터 범어네거리까지의 도로를 가리킨다. 이곳은 대구의 큰 도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대구의 상징과 같은 우람한 히말라야시더가 도로 한가운데 높이 자라고 있어 동대구역으로 들어오는 타지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길이다. 보도에 따르면 기존의 히말라야시더를 가급적 존속시키되 녹지공간을 더 확대하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며, 느티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심어 아름답게 꾸민다고 한다.
멋진 도시에 사는 것은 시민들의 꿈이다. 건축가나 도시공학가들은 더 나은 디자인으로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철골을 얽어서 세운 번들번들한 동대구 신역사를 보듯이, 그리 생태적이지 않은 서울의 청계천을 보듯이 새로 조성할 동대구로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소설가 엄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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