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歲月] 45년전에 이미 수지 1000…당구인 김석구(상)

입력 2010-02-05 08:12:12

당구계
당구계 '할배' 김석구씨가 기술시범을 보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대구에서 당구 좀 친다는 50세 안팎의 사람들은 빅 박스(BIG BOX) 당구장 주인 김석구(67)씨를 안다.(그의 명함에는 대표가 아니라 당구원 주인으로 돼 있다.) 당구계에서 그는 '할배' 혹은 '대장'으로 통하는데, 당구 경력 50년에, 1965년에 이미 4구 당구수지 1천이었다.

김석구씨는 당구장 손님들에게 '해라체'의 반말을 쓴다. 아무리 나이 차이가 있다고 해도 상대는 손님이고 그는 업소 주인인데 선뜻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다.

"어찌 하다 보니 이 계통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할배가 돼버렸다."

오직 나이가 많고, 당구고수이기 때문에 손님들을 격의 없이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웃는 얼굴로, 자상한 형님의 입장에서 젊은 손님들을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석구씨는 경북고 재학 시절 당구에 입문했다. 아버지가 탁구장과 당구장을 운영하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당구에 빠진 것이다. 그 뒤로 틈만 나면 그 친구의 집엘 들락거렸고, 급기야는 학교 근처나 시내(대구백화점 근처)로 진출해 당구장을 드나들었다.

당시 당구장은 미성년자 출입금지구역이었다. 그러나 당시 고교생들이 스포츠 머리를 한 덕분에 대충 휴가 나온 군인쯤으로 봐 주는 주인도 있었고, 고등학생인 줄 알았지만 '영업상' 눈을 감아준 주인들도 많았다.

◇당구가 좋아 공부는 뒷전

당구에 빠져 사느라 공부는 뒷전이었다. 당시 한강 이남 최고 명문 고등학교를 나오고도 대학 졸업장이 없다. 그럭저럭 '이름 없는 대학'에 입학하기는 했는데, 중간에 그만두었다. 김석구씨는 12년쯤 골프를 치기도 했지만 골프보다 당구가 더 좋더라고 했다.

1960년대만 해도 당구장은 어딘가 모르게 음침한 공간이었다. 담배연기 자욱한 좁은 공간에 동네 건달, 소매치기 등이 종일 죽치고 앉아 있기 일쑤였다. 건달이나 소매치기를 잡는다고 경찰들이 무시로 들이닥쳤고 애꿎은 미성년자 단속을 하곤 했다. 그래서 당구장 주인들이 벌금을 무는 일도 많았다.

그는 당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고 했다. 10년 정도 실크 무역업을 했지만, 일본과 중국이 수교하는 바람에 일본의 수입업자들이 중국으로 넘어가 회사 문을 닫았다. 당시에도 당구를 좋아해 일본 바이어를 기다리게 해놓고 당구를 치느라 손님을 잃기도 했다. 1980년에 대구백화점 앞에 당구대 10대를 갖춘 당구장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고, 영업이 잘돼 대구 시내 한복판에서 660㎡(200평)짜리 건물 한층을 모두 당구장으로 꾸며 운영하기도 했다. 당구장 인테리어를 위해 일본 견학까지 다녀왔을 정도였다.

◇쓴소리하는 당구계 할배

김석구씨는 당구장 손님들에게 잔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젊은 선수가 모자를 쓴 채,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인사하면 불러서 나무란다. 당구 잘 치는 것도 좋지만 인성이 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뒷전으로 밀쳐두고 당구장 출입을 하는 그에게 아버지는 "남자는 무엇이든 해봐야 한다. 하지만 치사한 짓, 남에게 해 끼치는 일, 예의 없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 역시 젊은이들을 그렇게 가르친다.

당구에 소질이 있어서, 선수로 뛰어보고 싶다는 학생이 찾아오면 그는 아버지의 직업부터 묻는다. 아버지가 월급쟁이거나 별로 돈이 없다고 하면 '당구는 취미로 하라'고 강권한다. 부모님이 힘겹게 벌어서 공부시켜주면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당구는 결코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당구든 바둑이든 선수 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은 부모의 경제 사정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했다. 또 공부깨나 하는 아이는 공부를 하는 게 좋다고 했다. 학교 공부라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공부만큼 평균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공부에 뜻이 없고, 당구에 재능이 있고, 집안에 돈까지 있다면 선수 생활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게 아니면 그저 좋은 취미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다."

김석구씨는 요즘 청소년들이 특별히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에 취해서, 또 자신의 재주를 믿고 덤비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신의 재능뿐만 아니라 자신의 뒤를 밀어줄 배경도 고려할 줄 알아야 하는데, 배경이 좋지 못하면 부모를 탓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공한 사람들 이면에 실패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안타깝다고 했다.

◇당구장 운영 전문지식 필요

무턱대고 당구 선수가 되겠다는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중에도 철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구장에서 서로 낯이 익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한두 게임 같이 치다가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김석구씨는 이를 경계했다.

"당구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게임만 해야 해. 돈 거래 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식사하거나 술을 함께 마시는 것도 안 좋다. 당구장에서 만나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돈 거래를 하고, 식사를 하나. 그러다 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할 게 없으면 당구장을 열겠다고 덤비는 어른들도 있다. PC 게임방의 전반적인 불황에다 국제 당구대회, 프로당구대회 등이 텔레비전을 통해 자주 방영되니 너도나도 당구장을 열어볼까 하는 유혹에 빠진다는 말이었다.

"3년 전부터 당구장이 급속하게 늘었다. 현재 대구에만 1천개가 넘는데 이 숫자는 일본 전역의 당구장 숫자보다 많다. 이렇게 많으니 장사가 될 리 없다. 1, 2년 안에 300개 정도만 남고 모두 사라질 거다. 예전에도 당구장 바람이 분 적이 있는데, 대구에만 1천400개쯤 되는 당구장이 문을 열었다가 300개 정도 남고 모두 문을 닫았다. 무턱대고 투자했다가 돈만 날린 것이다."

당구장 주인의 역할이라면 손님을 맞이하고 공을 내주고, 공을 닦거나 큐대 정리, 테이블 청소 정도만 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당구장을 운영하자면 전문가가 돼야 한다. 당구장 규모가 예전보다 훨씬 커졌을 뿐만 아니라 당구대 상태에 따른 처리법, 공 관리, 큐 관리, 전문적인 지도, 손님의 실력에 따른 물품의 차별화, 물품 구입 요령 등 알아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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