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대구시장의 답답함

입력 2010-02-04 11:05:59

김범일 대구시장은 답답해했다. 뭔가 마음먹은 대로 잘 안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그 속내까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시장이 답답해한다면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일 터다. 추진하는 일이 외부 여건 때문에 잘 안 되거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조직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김 시장의 자취를 보면 전자는 아닌 것 같다. 속 시원한 일처리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에 성공했다. 시내버스'지하철 환승제는 시민들과 직접 연관돼 가장 환영받는 치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공무원 조직이 잘 안 돌아간다는 뜻일 가능성이 컸다. 김 시장은 곧장 이에 대해 답을 했다. 공무원의 경직된 사고방식과 창의적 이지 못한 일 처리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예를 든 것은 오페라하우스 관장 선임 문제였다. 그동안 김 시장은 문화 관련 단체장을 임명할 때마다 외부에서 영입했다. 연고가 있어도 최소한 지역 문화 발전에는 거의 기여한 바가 없는 인사였다. 이에 대한 부담과 문화예술계의 건의에 따라 현재 공석인 오페라하우스 관장에는 지역 출신 인사를 뽑고 싶어했다. 참모들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구한 결과, 돌아온 답은 공모를 통한 선임이었다. 너무나 뻔하고 쉬운, 그래서 공무원 조직답다고밖에 할 수 없는 답이었다.

김 시장은 다소 상기된 얼굴로 문화예술계에 단일 후보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답이 없더라며 오히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되물었다. 참모들에게, 그리고 문화예술계에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문화예술계 인사가 없다는 것이 지역의 현실'이라며 말을 돌렸지만 김 시장의 답답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대구문화예술계가 자리다툼으로 온갖 투서가 난무하고, '내가 아니면 너도 안 된다'는 막무가내 식인 것을 잘 아는 터라 더욱 그랬다.

하지만 문화계의 일만큼은 김 시장이 자초한 바가 적지 않다. 김 시장은 오페라하우스 관장직을 비롯한 몇몇 문화 관련 단체의 대표를 임명할 때마다 지역 외 인사 영입으로 피해 갔다. 그 과정에서 추천위의 추천을 아예 무시하는 비상식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유는 한결같이 투서와 흑색선전에 따른 대구 문화계의 이전 투구였다. 하지만 외부 인사 영입으로 성과를 거뒀더라면 그나마 위안이 됐겠지만 그 성적표가 초라해 대구시에 2중, 3중 부담만 안겼다.

현재 대구시는 대구오페라하우스 관장을 공모 중이다. 10명이 응모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거나, 연고만 있거나, 전혀 연고가 없는 인사가 뒤섞여 있다. 누가 어떻게 평가하든 이들은 각기 방면의 전문가들임은 분명하다. 이런 공모 때마다 그랬듯 이번에도 특정 인사 내정설이 나오고 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진위 파악이 힘든 마타도어도 판을 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최종 임명권자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지역 혹은 외부 인사로 하든, 추천위의 추천에 따르든, 이를 무시하든 모든 결정권은 시장이 갖고 있다.

인사에 빗대 시장에게 이런 비유를 했다. 누가 보더라도 측근이라고 할 만한 사람부터 먼저 치고, 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해라. 그리고 잘못된 원칙이라도 그 원칙을 지키는 인사를 하면 불평불만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번 오페라하우스 관장 선임 건도 비슷하다고 본다. 특정 인사 내정설이 흘러나오는 것은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또 정치적이거나 개인 친분에 따른 청탁도 있을 것이다. 이를 먼저 내치지 않으면 정작 적임자는 설 땅이 없어 온갖 잡음만 터져 나오는 것이다.

CEO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사람의 장막을 걷는 일이다. 장막 안이 다소 편안할지는 몰라도 바깥을 볼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다. 많은 'Yes'보다는 하나의 'No'가 더 중요하다. 'No'가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과 다름없다. 그리고 그 'No'를 수용할 수 없는 CEO는 CEO로서 자격이 없다. 이는 대구시장뿐 아니라 결정권을 가진 모든 이에게 해당한다.

鄭知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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