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교는 방학 중이다. 이른 아침 등교시간에 아이를 데리고 교문 앞을 오가거나, 심야 시간에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가 야간자율학습 마치기를 기다리는 학부모들의 차량이 방학 중에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겨울방학에 들어간 학교의 겉모습은 더욱 조용하다. 그러나 지금 학교 안은 겉과는 달리 새 학기부터 시작될 온갖 변화에 대응할 교육 계획과 전략을 짜느라 뜨겁게 바쁘다.
새 학기에는 무엇보다도 학부모가 학교 교육에 미칠 영향이 커지게 된다. 먼저, 어떤 법을 통하여 어떤 모양새로 결정되든 3월부터는 학부모가 교사와 학교를 평가하게 될 것 같다. 학부모의 교사 평가는 오랫동안의 갈등과 타협, 연구와 검토를 거쳐 온 것이라서 심리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용이 되고 있지만, 제도적으로는 시작하는 단계여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제 학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학부모에게 다가가게 되었다. 종전의 방식대로 일 년 중 어느 하루를 학교가 임의로 정해서 학교에서 지정한 교사의 수업만 공개하고, 학부모들은 잠시 학교를 구경하는 듯 참관하고서 학교에 대해 안심하는 방식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측으로서는 평가 항목에 해당하는 장면을 볼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과 미리 학교 경영이나 수업 공개 범위에 대하여 협의를 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고 이에 따라 학교 공개의 질적 수준은 분명히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개별 학부모들이 전문가 집단인 학교와 교사를 평가할 수 있는 자질을 하루아침에 갖출 수 있을까? 학부모 개인의 역량은 천차만별이다.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는 수준을 넘어 지도, 컨설팅해 줄 수 있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기 자녀의 교육 생활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학부모도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학부모는 내 아이가 남보다 잘하기를 바라는 지극히 사적인 욕구에 따라 교사를 판단하기 쉽다. 이것이 학부모로 말미암은 문제이든, 우리 사회 또는 교육 담당자로 말미암은 문제이든 간에 지난해 교총의 조사를 보면 학부모의 가장 큰 문제는 '내 자녀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교육관'이 51.2%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과학기술부는 단위 학교의 학부모회를 제도적, 정책적으로 육성 지원하겠다는 안을 내 놓았다. 학교별 학부모회 운영 계획서를 공모 심사해 당장 금년에 전국의 2천 개 학교 학부모회에 500만 원 정도로, 총 1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에서 특정 학교가 우리는 지원금 안 받고 학부모회 안 만들겠다 하는 태도를 가지기는 명분에도 실리에도 맞지 않을 듯하다.
해방 후 후원회, 사친회, 기성회, 육성회 등 이름을 바꾸어가며 학교에 대하여 재정적 후원 기능의 역할을 주로 해오던 학부모회에 대하여 이번에는 오히려 정부가 지원금을 주면서 학교 교육 활동에 참여해 달라고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학부모회도 형편을 달리해야 한다. 아이가 학급 실장이나 전교 회장이 되어서 졸지에 그 학부모가 당연지사라는 듯이, 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학부모회 임원이 된다든가, 몇몇 학부모들이 알음알음으로 만나 친목하면서 아이들과 선생님 간식을 제공하던 모임을 학부모회로 인정할 수는 없다.
새 학기에는 학교 단위의 학부모회가 말 그대로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학부모회가 구성되는 과정과 구성원의 역량에 따라 학부모회의 역할 범위와 영향력은 달라질 수 있다. 누구든지 학부모라면 내 아이가 있는 학교에서 당연히 학부모 회원이 되어 그 학교를 중심으로 아이들과 자원봉사도 하고 학교 교육 활동에 대하여 모니터링도 하면서 학교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책임 있는 평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아이만 내 차에 태우고 달리는 학부모는 때로 남을 아랑곳하지 않고 신호 위반이나 과속을 하기도 한다. 그 학부모가 녹색어머니회 회원이 되어 학교 신호등 앞에 깃발을 들고 서게 되면 이웃집 아이와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게 하려고 마음을 쓰게 된다.
이처럼 내 아이만 바라보는 학부모의 사적인 욕구들이 개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경쟁과 이기심으로 치닫게 되지만, 학부모회를 통한 공론의 장에 모이게 되면 배려와 협력을 바탕으로 모든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교육 환경과 여건을 고민하게 된다.
새 학기에 우리 집 아이들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새로 입학한다. 나는 그 학교의 학부모로서 내가 한 말대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좀 걱정된다.
이상현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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