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해부터 유사휘발유(시너) 제조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을 별도 신설해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정작 시너 판매업에 대한 법 규정은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대구 서구 평리동 한 시너 가게. '정품 시너 36ℓ=3만7천원'이란 간판이 업소 앞에 버젓이 내걸려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20대 청년이 헐레벌떡 뛰어나온다. 이내 시커먼 가림막으로 내부를 가린다. '몇 깡(통)이나 넣을까요?' 그는 '꿀물'(시너를 부르는 은어)이라 적힌 쿠폰 한 장을 내밀더니 이동식 주유구를 이용해 시너를 넣기 시작한다. "남은 시너는 라벨을 붙여 보관이 가능합니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에는 유사 휘발유 주유시 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억원 이하 벌금형, 운전자는 50만원의 벌금을 받도록 돼 있다. '무시무시한' 처벌 같지만 실제로는 생계형 범죄라는 이유로 약식 기소되고 가벼운 벌금형이 전부다.
달서구 한 시너 업자는 "처음 적발시 10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 벌금이 나오는데 3일만 영업을 해도 벌금을 빼고도 남는다"며 "네 번 걸려 사법처리되기 전까지는 장사를 접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제조업체에 대한 처벌 규정 강화는 판매업자들에겐 소귀에 경읽기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시너 판매점들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며 경찰 단속을 비웃고 있는 실정이다. 판매소끼리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실시간 채팅창으로 단속 정보를 주고받는다. 단속이 뜨면 수십여명의 업자들이 단속 지점과 시간 정보를 온라인으로 공유한다.
시너 제조업체에 대한 단속도 어렵다. 제조업체들은 시너 배달차량을 택배 차량으로 위장해 공장에서 떨어진 일정 장소에서 도매업자들과 접선한다. 도매업자 B씨는 "시너 공장 단속이 강화된 뒤 제조업자들은 키를 꽂아둔 시너 차량만 특정 지점에 세워두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주유소협회 도명화 사무국장은 "제조업체 단속만으로 유사석유를 뿌리뽑을 수 없다"며 "시너 판매업자들이 높은 이익률 때문에 단속을 받고도 돌아서면 영업을 하는 게 보통이라는 점에서 판매업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구주유소 협회에 따르면 대구시 주유소는 모두 450여 곳이나 시너 판매업소는 90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구 월배 구 비상활주로의 경우 수년 전부터 10여개의 시너 판매업소가 밀집해 거대한 짝퉁 휘발유 판매소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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