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특집시리즈 '동행-경북을 걷다'를 맡았다. 경북도내 23개 시'군 중 한 곳씩을 정해 매주 빠짐없이 화가들과 함께 길을 찾아 나선다. 가까운 곳은 하루종일 걷는 것으로 끝나지만 먼 곳은 1박2일을 각오해야 한다. 유난히 매서운 올해 추위가 길을 막아선다. 한창 추울 때는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손가락이 곱아들 지경이다. 길을 찾는 것도 숙제다.
당초 시리즈를 시작한 취지가 '걷고픈 경북의 길을 찾자'는 것. 거기에 길과 어울린 이야기가 가미돼야 하고, 주변 볼거리도 시시해선 안 된다. 그렇다고 너도나도 아는 길을 찾아갈 수도 없다. 쓸데없이 지면만 낭비하는 꼴이고, 독자들 시간만 빼앗는 짓이기 때문이다. 행여 유명한 곳이라도 다른 길을 알려줘야 하고, 그 길 속에서 지금껏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녹여내야 한다. 결국 찾는 것은 길이지만 그 길을 만나려면 사람부터 찾아야 한다. 사람이 바로 길이다. 길 안내를 맡는 공무원에게 큰 도움을 받는다. 그들의 눈을 통해 길을 보게 된다.
길 안내는 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그네들은 수십 번 다녔던 길을 추위 속에 볼이 빨갛게 되도록 다시 걸어야하고, 이런저런 이야기까지 들려줘야 한다. 언론사에서 부탁을 하니 거절도 못할 노릇이다. 길이 알려져서 외지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래저래 손해볼 것은 없으니 굳이 마다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어찌됐건 일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대충 지도 펼쳐놓고 길 설명하고, 여기저기서 자료 끄집어내서 손에 쥐어줘도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다닌 예닐곱 시'군청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마치 제 일처럼 기꺼운 마음으로 도움을 줬다. 공무원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여전히 '철밥통' '탁상행정'과 같은 곱잖은 수식어가 붙지만 분명 공무원들은 변하고 있었다. 매서운 추위 속에 온종일을 걸었지만 그들 덕분에 산과 들마저 더욱 사랑스럽게 보였다.
20년간 그 동네 산이라는 산은 다 오르고 내려서 눈을 감고도 산길이며 들길을 그려내는 사람도 있었고, 자기가 살지도 않는 동네인데 그 곳 주민들이 알아보고 반갑게 먼저 인사를 건네오는 사람도 있었다. 생태탐방로를 만들기 위해 길도 없는 계곡을 수백 번 내달린 사람도 있었고, 기자가 귀찮을 정도로 골골마다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며 발길을 붙잡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애착이 느껴졌다. 그곳에 터전을 두고, 숨 쉬고 밥 먹는다는 사실에 온몸으로 고마워하며 그 마음을 알리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춥다고 불평도 못하고, 길이 험하고 멀다고 투정부리지도 못한다. '그게 그 사람들 하는 일인데 뭘 그리 감읍하느냐'고 말한다면 반박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느껴지는 바는 있다. 그저 일이기 때문에 못내 따르는 것과 그 일이 즐겁고 사랑스러워서 성큼 앞장서는 것은 분명 하늘과 땅 차이다. 그것이 느껴졌다. '길만 좀 더 정비되면, 먹을거리만 좀 다양해지면, 쉴 곳이 더 많아지면'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즐겨찾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표정이라니. 모 항공사 광고에 이런 문구가 나왔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 중 이사열전에 나오는 문구.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 하는 사소한 일이 마뜩잖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는 속뜻일 터. 이번 '동행'의 진짜 주인공은 기꺼운 마음으로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길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도 크지만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 더욱 기쁘다.
김수용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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