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베이비붐 세대를 다룬 TV 프로그램에서 "어릴 때 정말 추위에 많이 떨었는데 이젠 집에서 반바지만 입고 지낸다"며 현재의 성취에 만족하는 한 50대를 본 적이 있다. 의식주 가운데 무엇 하나 변변한 게 없었던 그들의 성장기는 분명 추웠을 것이다. 매서운 날씨만이 아니라 언제나 주위를 떠나지 않던 허기, 가족의 체온에 의지해야 하는 냉골방, 희망이 보이지 않는 불안한 미래가 겹으로 살을 에고 드는 건 당시 세대라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수년 만에 한파가 계속되면서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전기 난방이 주 원인이다. 전력 수요는 연일 최대치를 경신해 마침내 정부가 비상사태를 우려할 지경에 이르렀다. 1993년 이후 16년 만에 여름철 최대 수요를 넘어 예비 전력의 안정적 수준마저 무너졌다고 하니 당장 대책이 없는 정부로서는 국민들에게 전기 절약을 읍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공급된 건 1898년 한성전기회사 설립이 시발이다. 이탈리아의 동물학자 갈바니가 두 종류의 금속을 연결해 죽은 개구리의 발 근육에 갖다 대자 경련을 일으키는 걸 보고 '전기는 개구리의 신경 속에 숨어 있다'고 외친 게 1780년이고,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1879년에도 전기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걸 감안하면 불과 100여 년 만에 전기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최대의 에너지원이 된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베이비붐 세대들의 경우 건설비가 싼 화력발전소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1960년대 들어 전국 방방곡곡이 전기로 밝혀지던 환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 36만7천㎾에 불과하던 발전설비가 지난해 200배인 7천300만㎾로 확대되는 등 양적인 성장과 동시에 원자력 발전 등 질적인 변화도 생겼다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막상 전기 의존이 지나치게 심각해진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예상 못한 위기에 대해서는 태무심했던 게 사실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2세들이 반바지를 입고 겨울을 날 수 있는 건 부모 세대가 평생을 바쳐 이뤄온 성취 덕분이다. 하지만 모처럼 닥친 추위에 온 나라가 허둥대며 위기감에 빠지는 현실은 물려줘서는 안 될 유산이다. 단순히 에너지 절약 캠페인이 아니라 어떤 방면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집단적 위기를 어떻게 예방하고 대처해야 할지 준비하고 가르쳐야 할 때다.
김재경 교육의료팀장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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