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흥의 책과 예술]체 게바라 어록

입력 2010-01-13 07:45:14

체 게바라 지음·김형수 엮음/시학사 펴냄/8천500원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열일곱 살에 쓴 고등학교 졸업 논문, 《직업 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성찰》은 "우리가 만인을 위해서 가장 헌신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어떠한 무거운 짐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짐이란 만인을 위한 희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사소하고 한정적이며 이기적인 기쁨을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에 속하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행동은 조용히 그러나 영원히 영향을 미치며 살아 숨 쉬게 되고, 우리를 태운 재는 고귀한 인간들의 반짝이는 눈물로 적셔질 것이다"라고 끝을 맺는다.

새해 벽두에 죽은 유령이 되어 떠도는 마르크스라니, 더구나 이미 자본주의와의 싸움에서 완패로 끝난 사회주의의 몰락마저도 기억에 가물거리는데 다시금 마르크스라니 뜬금없는 노릇일지 모른다. 분명 그렇다. 내 한 몸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무슨 남을 위한 헌신이며 희생일 수 있단 말인가. 소위 세상의 평등을 외치던 이들이 잡았던 권력은 도대체 무엇을 했더란 말인가. 정말 그렇다. 백번을 양보한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의 실패는 자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승자의 역사만이 역사일 수는 없지 않던가. 비록 실패로 끝났다 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뜨거운 예의는 여전히 진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체 게바라(Che Guevara)는 오늘 이 순간 다시금 우리의 가슴에 빛나는 별이다.

"태양을 마주할 젊은이라면 누구나 뜨거운 가슴을 찾아 헤맬 줄 알아야 한다. 그 길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가서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 할지라도."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쿠바혁명의 2인자의 자리를 포기하고 볼리비아 민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체 게바라의 길은 얼마나 빛나는 것인가. 그는 말한다. "'우리'를 위해 '나'를 내어 줄 수 있을 때, 인간은 아름다웠으며 여전히 아름답다." 어쩌면 지금 세상은 '우리'보다는 '나'에 몰두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한때 '우리'를 지향했던 이들조차 '나'에 집착한 결과임에 분명하다. 결국 이것은 '나'조차도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이제 진실로 세상에 필요한 것은 '우리'다. 그 '우리'는 '나'를 찾는 길이며 희망이다.

새해 첫날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도 여전히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선배는 새해에 다시 『자본론』을 공부하겠노라며 웃었다. 1985년 여름,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던 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해야 할 그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선하고 커다란 눈에 고였던 눈물을 기억한다.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정치판으로, 또는 쉬운(?) 길을 찾아 나설 때도 여전히 현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기름때에 젖은 손으로 악수를 청하던 그도 이미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의 노랫말처럼 흰 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여도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세상은 미싱처럼 여전히 잘 돌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단테의 금언은 그 선배에게는 아직도 유효하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여행작가·㈜미래티엔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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