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을 '도박 공화국'으로 만들려는가

입력 2010-01-09 07:01:08

지난해 경마장, 경륜장, 카지노 같은 사행성 오락 시설의 입장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지난해 824만6천 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5.8%, 2006년에 비해 37.2%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경제 불황 속에서 한탕을 노리거나 고달픈 현실을 잊기 위해 사행성 오락에 몰두하는 이들이 많다. 재산을 탕진하고, 심지어 집까지 저당 잡히고 길거리로 나앉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이들 사행성 오락은 국가가 만든 시설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지역 개발 운운하며 강원도 정선의 카지노와 경마장 3곳, 경륜장 3곳, 경정장을 공기업 형식으로 허가했다. 경마·경륜·경정을 순수한 스포츠나 오락 정도로 즐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손가락이 없으면 발가락으로 도박을 한다'는 말이 있듯 이런 곳을 하루라도 찾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숱하게 널려 있는 것이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앞장서 사행 산업을 유치해 세수 확대라는 미명하에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 몇 년 전에 사회 문제가 됐던 '바다 이야기'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정부가 공인하는 사행성 오락과 '바다 이야기'는 허가 유무와 규모 면에서 차이가 날 뿐, 도박의 속성은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영천에 생기는 제4경마장에 대한 우려가 크다. 스크린을 통해 베팅하는 장외 발매소는 정도가 더 심하다. 한 해 3천만 명 이상이 찾고 매출이 10조 원을 넘는다. 전국 곳곳에 산재한 장외 발매소가 경마 32개, 경륜 21개, 경정 15개소나 된다.

'바다 이야기' 파문으로 등장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지난해부터 사행 산업 규제를 시작했지만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경마 일수와 경주 수가 축소됐고 온라인 베팅의 폐지, 경마·경륜·경정의 장외 발매소 신설도 금지했다. 사감위가 합법적 사행 산업의 매출액을 15조 9천억 원으로 한정했는데 불법 사행 산업까지 합하면 한국의 사행 산업 규모가 한 해 수십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도박공화국'이나 다름없는데도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단순하게 규제 일변도로 사행 산업을 다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 국민적인 캠페인과 사회 운동을 벌이고 도박 치료 시설을 만드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을 더 이상 도박공화국으로 놓아둘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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