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맛집]<1>청도장 여정옻닭집

입력 2010-01-09 07:16:16

왁자지껄 장터에서 부드러운 옻닭 한입 '속세 속 극락'

청도장 여정옻닭집 주인 박정늠 씨가 뚝배기에 옻닭을 담고 있다.
청도장 여정옻닭집 주인 박정늠 씨가 뚝배기에 옻닭을 담고 있다.

신새벽, 밥 한 술 대충 뜬 후 메주콩, 참깨 두어 말 지고 신작로로 나선다. 읍내 장터까지는 시오리 길.

알곡을 싸전에 넘긴 후 고등어 한 손 사고 대장간에서 낫 한 가락 벼려 나오는 길. 때마침 제사장을 보러 나온 사촌동서와 맞닥뜨린다. 형님, 동생하며 반갑게 손을 맞잡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휘장을 걷어붙이고 들어서는 곳은 장터 국밥집.

점포 바깥에 걸어놓은 무쇠솥에선 벌건 국이 설설 끓고, 기름때가 반질반질한 목판에 고기를 썰던 안주인은 눈길도 주지 않고 "어여, 저기 가봐라" 소리친다. 구석자리 기다란 나무 의자에 걸터 앉아 장국을 안주 삼아 불콰해지도록 탁배기 술잔을 주고받다 보면 농사일에다 아이들 소식에 이웃 이바구까지 길게 이어진다.

예부터 5일장 '장터국밥집'은 장꾼들의 한 끼 요기뿐만 아니라 인정미 넘치는 사교의 장이었다. 요즘은 5일장의 퇴락에 따라 곳곳의 국밥집 풍경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면서 명성을 떨치는 '5일장 맛집'들을 찾아 나선다.

◆청도장 여정옻닭집

청도장은 예로부터 창녕장과 진주장과 더불어 우시장이 크게 열리던 곳이다. 청도읍 소재지에 자리한 만큼 골골의 농산물이 모이고 부산 쪽 어물이 올라와 맞바꿔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 시장 한복판에 5일장 맛집으로 흔치 않은 옻요리 전문 여정옻닭집(주인 박정늠·70)이 있다. 41년 전 문을 연 여정옻닭집은 이제는 대를 이어 고부가 나란히 꾸려가고 있다.

옻닭은 알레르기성 피부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듣기만 해도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 옻닭만큼 충성도 높은 마니아를 거느린 요리도 흔치 않다. 옻은 예로부터 한방에서 뱃속을 보하고 근육을 연결하며 골수를 보충시켜준다고 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옻에는 항암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패방지, 숙취해소, 노화방지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효는 둘째치고 일반인들에게는 옻 알레르기 불안감이 여전하고 고기 자체도 퍽퍽할 뿐 맛이 없어 요리로 별 매력을 못 느끼는 것도 사실. 하지만 여정옻닭집을 한번 들르고 나면 옻닭에 대한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보통 옻닭은 참옻나무 가지를 넣고 끓여 우려낸 물에 닭을 넣어 삶지만 여정옻닭집의 경우는 요리방식이 전혀 다르다. 가마솥에 참옻뿐만 아니라 헛개나무, 오가피, 느릅나무, 운지버섯, 인진쑥 등 13가지의 약재를 함께 넣고 3시간 정도 곤 다음 닭을 10마리쯤 넣어 한꺼번에 끓인다. 한약재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삶긴 옻닭은 고기가 일반 백숙보다 부드럽고 담백하다.

옻토끼, 옻꿩, 옻개 심지어 옻장어까지 같은 방식으로 고여 나온다. 특히 옻장어는 육질은 걸러지고 곰탕국물처럼 약간 바특하여 건더기가 없지만 최고의 스태미나식이라고 주인 박씨는 자랑한다.

"나이 서른에 혼자 몸이 되었소. 넉넉잖은 종갓집에 시조부모까지 11식구를 책임져야 하니 막막했지. 그래서 어릴 적 산골에서 친정어머니가 쇠약한 친정아버지한테 해주던 옻닭을 생각해내고 장사를 시작한 거요. 그렇게 40년 넘도록 해왔는데 아직 우리집 옻닭 먹고 옻 오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단골 중에는 17년째 한 달에 세 번 꼬박꼬박 오는 손님도 있지."

애주가에게 여정옻닭집 먹을거리는 옻닭보다 옻동동주에 더 구미가 당긴다. 옻과 약재를 곤 물을 식혀 고두밥을 찌고 누룩을 넣어 보통 동동주와 같이 담근다. 보름간 괸 동동주는 빛깔이 다소 거무스름하고 톡톡하다. 옻동동주는 취기가 천천히 돌아 마실 때 몸에 부담이 없다. 술 깨고 난 이후에도 전혀 두통이나 속쓰림을 느낄 수 없다.

여정옻닭집은 1년 365일 설, 추석날 명절에도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장날에는 주차가 불편하다 보니 무싯날에 손님이 더 많다. 무싯날 중에도 휴일은 더 복잡해서 기다려야 하는 때도 있다. 옻닭 한 그릇 6천원. 옻동동주 한 되 7천원. 옻장어·옻토끼·옻개 등은 전날 주문해야 맛볼 수 있다. 전국 택배도 가능. 청도읍 고수8리 777-2번지. 054)373-3554.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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