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EXCO의 마술사…여성 전시플래너들의 수다

입력 2010-01-09 07:16:52

기획·마케팅·부스설치…달고 사는 몸살, 즐길 정도

대구EXCO 전시오거나이저
대구EXCO 전시오거나이저 '여성 7인방'이 대구EXCO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외쳤다. 임지희 대리, 장미화 과장, 은성미 사원, 최정은 대리, 김은파 대리, 김용분 대리, 이지은 사원(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전시'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알리기' 위한 활동 중 하나다.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어떻게 하면 붙잡을 수 있을까가 핵심이다. 물론 제품의 성능이나 디자인, 브랜드의 힘이 눈길을 잡을 수 있겠으나 이를 소개하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다.

때문에 '전시'와 '여성'은 궁합이 맞는 절묘한 단어가 아닐까. 예를 들어 두 개의 방이 있다. 하나의 방 앞에는 남성이, 다른 방에는 여성이 서서 사람들을 맞는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느 방을 선택할 것인가? 남성 대부분은 당연히 여성이 서 있는 방을 택할 것이고, 여성도 마찬가지일 듯 싶다. 물론 장동건이 서 있다면 사정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기업과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프로모션 활동을 기획하고 원활하게 진행하는 '전시플래너' 중에는 빼어난 여성들이 많다. 대구EXCO도 마찬가지다. 대구EXCO에는 7명의 여성 전시플래너들이 일을 하고 있다. 전체 직원 51명 중 14%에 불과한 숫자이지만 역량은 절반 이상이다.

◆대구EXCO 미래 우리가 이끈다

2001년 개관, 올해 10년차를 맞은 대구EXCO는 전시 규모를 대폭 늘려 흑자 원년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 목표의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다. 4일 장미화(33), 임지희(30), 최정은(29), 김은파(32), 은성미(26), 이지은(29), 김용분(34)씨가 한자리에 모였다. 1시간가량 즐거운 수다를 즐겼다.

"기획부터, 행사 구성, 공간 확보, 인력 관리, 시설 및 공연, 무대 기획 및 설치와 실행, 전시회 마감까지 수많은 업무를 수행합니다. 해외 바이어 초대나 컨벤션 기획까지 더해지면 인사 초대, 숙박, 식사, 관광 및 동반자 서비스 준비까지 업무가 더해지죠."

이들은 전시플래너의 일이 쉽잖은 분야라고 했다. 전시 기획부터 마케팅, 운영, 사후 관리까지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전시플래너'라는 명칭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의미를 담은 '전시오거나이저'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성이어서 좋은 점도 많다. 임지희씨는 "업체 관계자들과 접촉할 일이 많은 특성상 여성이라는 점이 유리할 때가 많습니다. 여성의 사교성, 친화력을 통해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을 잠재울 수 있지요"라며 웃었다.

장미화씨가 소개한 일화 하나. "입사 후 처음 맡은 전시회 때문에 여러 참가 업체들을 방문했는데 한번 만난 분들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남자 직원들은 여러 번 만나야 겨우 이름 정도 알리는 데 성공하지만 여성은 이름 알리기가 쉽더군요. 업체 사장들이 대부분 남자이다 보니 여성이어서 특혜 아닌 특혜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힘든 점은 헤아릴 수가 없다. 부스 설치 공사, 감리까지 맡아야 하는 일은 어지간한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단다. 게다가 출근 시간은 있지만 퇴근 시간이 없는 구조는 물론 일의 연장선으로 이어지는 술자리는 곤욕이다.

이지은씨는 "일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맡은 전시회를 끝내고 거기에 반응까지 좋아 다음 전시회 신청률이 높게 나왔을 때 얻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2007년 입사한 막내 은성미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여직원들끼리 입술 보호제를 주고받았어요. 몸살을 달고 살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대구EXCO 미래를 우리가 이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할래요"라고 했다.

◆집에서는 알뜰한 엄마

이들 7명 가운데 이지은, 은성미씨를 제외한 5명이 집에서는 알뜰한 '엄마'다. 퇴근 시간이 없다는데 육아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5명의 입에서 '시어머니'라는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그래서 항상 '죄인' 신세란다. 최근 출산한 최정은씨는 사내커플이다. 그는 "힘든 일보다 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일터에 나오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다. "직장맘이라면 누구나 같은 고민일 거예요.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기는 일이 무슨 고민이냐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남자들이 많은데, 아마도 절대 이해 못 할거예요.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기분을요."

임지희씨는 "출산도 시기를 가려야 하는 비애도 있다"고 했다. "전시회가 많은 시기는 피해야 해요. 출산 휴가를 가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 여직원들은 출산 시기를 전시회 비수기인 여름·겨울 방학 시즌에 맞춘답니다." 그래서 이들의 아이들은 대부분 생일이 비슷하다.

또 출산 예정일까지 일터에서 씨름해야 하는 것도 여성만이 가진 힘든 점이다. 김은파씨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하는데 만삭의 몸으로 있으면 상대방이 불편해 하거나 힘들어한다"며 "출산율 세계 꼴찌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애국하는 길은 아이를 한 명 더 낳아야겠지만 이런 고민에 처한 여성이 많다는 사실을 정부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이가 하나뿐인 장미화씨도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출산장려금으로 돈을 얼마 더 주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육아정책 마련이 더 중요하다"며 "아이를 맡아 키우시고 있는 시부모님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월 5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다. 올 연말에 여직원들끼리 조촐한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다. 아직 사장에게도 알리지 않은 비밀모임이다. 즉석에서 'EXCO 아이리스'라는 모임 명칭을 정했다.

"다른 곳에서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많지만 우리한테는 어울리지 않아요. '언니, 동생' 하면서 서로 이끌고 밀어주는 풍토가 일하는데도 좋은 효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대구EXCO에 쓸만한 여직원들이 많더라는 말을 꼭 듣고 싶네요."

이들의 바람대로 10년차를 맞은 대구EXCO가 흑자 원년 달성은 물론 세계 속으로 한 단계 상승할 수 있을 듯하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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