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토크박스]숫자의 함정

입력 2010-01-07 11:06:59

친구 셋이서 새해맞이 여행을 떠났다. 허름한 여관을 잡았는데 숙박비가 3만원이었다. 한 사람당 1만원씩 갹출하여 숙박비를 치렀다. 마침 그날 보일러가 말썽을 부려 주인이 5천원을 돌려주었다. 그런데 여관 직원이 손님들에게 5천원을 돌려 주려다가 2천원을 챙기고 3천원을 돌려주었다. 3명에게 천원씩 돌려준 것이다.

잠시 여기서 계산을 해보자. 원래 3만원이었던 여관비를 지불하기 위해 처음에 한명당 만원을 냈는데 1천원을 돌려받았으니 각자 9천원을 낸 셈이다.

'9천원×3=2만7천원'이다. 맞는가? 여기에다 보조가 슬쩍한 돈 2천원을 더하면 '2만7천원+2천원=2만9천원'이다.

어라! 그럼, 1천원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것이 숫자가 가지고 있는 허상이고 함정이다.

맨날 환율이 어쩌고, 경제 위기가 어쩌고, 주가가 어쩌고 하면서 떠들어댄다. 경제 지표가 좋으나 나쁘나 그건 단지 숫자놀음일 뿐이다. 다만 우리가 따뜻하게 세상을 느끼고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 그게 좋은 세상이 아닐까. 숫자는 함정일 뿐이다.

며칠 전 용산 참사 문제가 다행히 타협점을 찾았다. 하지만 돈 몇 푼과 총리의 유감으로 그들이 받은 상처를 달랠 수 있을까?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다 쫓아낸 뒤 번듯한 아파트만 가득한 도시가 만들어지면 정말 살기 좋은 도시가 될까? 1년을 꼬박 냉동고에서 꽁꽁 얼어 붙은 채 땅에 묻혀 자연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원혼들의 한이 돈 몇 푼에 녹을 수 있을까?

주가가 오르고, 4대강에 깨끗한 물이 흐르고, 좋은 아파트가 온 나라를 가득 채우면 과연 행복할까? 개발 이익을 가져가는 소수와 겨울 한복판에 내몰린 채 여전히 가난한 다수가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그 모습이 과연 아름다운 세상일까?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마음이고 세상이다.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글을 잠시 떠올려본다.

"없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추운 겨울보다 차라리 여름이 낫다고들 하지만 우리네 죄수에겐 추운 겨울이 차라리 낫습니다. 옆의 사람이 단지 체온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이 미워지는 여름보단, 곁의 사람의 체온만으로도 사람이 좋아지는 겨울이 우리네 죄수들에겐 차라리 낫습니다."

권 오 현 053)592-1491 nsdr17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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