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세종시와 集團思考

입력 2010-01-07 10:45:36

1961년 4월 17일에 있었던 피그(pigs)만 침공 사건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최악의 실수로 꼽힌다. 쿠바 출신 망명자를 피그만에 침투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던 이 사건은 미국 외교사에 지금도 '재앙'으로 남아있다. 1천500여 명의 침공군 대부분이 포로가 되거나 사살됐다. 케네디 행정부는 포로 송환의 대가로 쿠바에 5천300만 달러를 원조로 제공해야 했고 국제적인 비난을 뒤집어써야 했다.

이 계획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것이었다. CIA는 쿠바 망명자를 비밀리에 훈련시켰지만 1천500여 명이나 되는 지원자를 비밀리에 모집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침공 후 쿠바 내에서 봉기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무엇보다 카스트로 정권이 1천500명의 침공군에 의해 무너질 것으로 기대한 것 자체가 착각이었다.

이렇게 어리석은 결정이 이뤄진 원인은 케네디 행정부 참모들 중 누구도 이 계획에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 앨런 덜레스 CIA국장 등 결정에 참여한 참모들 모두 친구 사이였다. 이들은 성장 배경도 비슷했고 출신 학교도 대부분 하버드대학이었다. 워낙 친했던 이들은 침공 계획의 무모함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다. 당시 백악관 특보로 침공 전략 회의에 참석했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국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들은 마치 사교 클럽의 회원인 양 처신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요한 결정들이 클럽 회비를 얼마나 낼지 걱정하는 소규모 이사회처럼 훈훈한 동료애 속에서 이뤄졌다"('왜 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카스 R 선스타인)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뒷날 이러한 현상을 '집단사고'(groupthink)라고 명명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이중사고'라는 말에서 차용한 이 용어는 집단 내 압력으로 생기는 정신 능력, 현실 검증력, 도덕적 판단력의 저하를 가리킨다. 쉽게 말해 친한 사람끼리만 모여서 결정을 하다 보면 잘못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집단사고가 초래한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이 밖에도 많다. 닉슨의 워터케이트 사건 은폐, 히틀러에 대한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책, 1941년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신생아에게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임신부 입덧 방지약 탈리도마이드를 판매키로 한 그뤼네탈사(社)의 결정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5일 윤곽을 드러낸 세종시 수정안도 이 같은 집단사고의 결과물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수정안 초안은 한마디로 '온갖 특혜로 버무린 종합 선물 세트'다. 수정안이 이대로 확정될 경우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 균형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다른 지역의 공통된 우려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 계획을 처음 밝혔을 때부터 이런 우려는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세종시 수정 계획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은 조금만 따져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머리 좋은 관료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수정안이 틀을 갖추기까지 정부 내 논의 과정에서 반대 의견이 있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 정부는 출범 때부터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그 바탕은 10년 만에 압도적 표차로 정권을 탈환했다는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확신을 낳고 확신은 반대를 용인하지 않는다. 영어 몰입 교육 해프닝, 미국산 쇠고기 수입, 4대강 사업의 임기 내 완료 등 일방통행식 정책 결정이 이를 잘 말해준다. 다른 지역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세종시 수정을 밀어붙이는 저돌성은 MB 정부의 이런 생리를 염두에 두고 볼 때 오히려 자연스럽다.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할 경우 집단사고의 경향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짙다. MB 정부의 남은 임기 중 또 어떤 집단사고적 정책 결정이 나올지 심히 걱정된다.

2차대전 중 루스벨트 행정부의 고위직에 있었던 루터 귤릭은 연합국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을 "민주주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정책에 대한 검토와 비판"이라고 했다. 연합국은 폭넓은 비판과 논의를 허용함으로써 '다양한 실패'를 피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전쟁 수행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내달리고만 있는 MB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충고다.

鄭敬勳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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