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욕]최준용의 인턴십 다이어리-#13. 뉴욕의 크리스마스

입력 2010-01-07 07:29:53

길거리 온통 붉고 푸른색 물결

길거리는 활기에 넘치고 온통 붉고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갓 잘라온 나무들이 팔리고 길거리에는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뉴욕의 크리스마스 풍경이다. 사실 이것은 비단 뉴욕만의 풍경은 아닐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몇 안되는 이벤트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 한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사실 다른 지역은 대체로 가족끼리 조용히 보내는 분위기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모든 것의 가격이 두 배로 뛴다. 우선 묵을 숙소를 마련하기 위해선 비싼 가격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최소 한두 달 전에 예약을 해둬야 한다. 뉴욕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는 한국인들로 한국인 민박업체는 일찌감치 매진이 됐단다.

뉴욕 크리스마스의 상징인 록펠러 센터 앞에는 사람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다. 사람들은 뉴욕에서 가장 큰 트리를 보기 위해 모였다. 이 트리는 웬만한 5층 건물만한 크기다.

특히 트리 주변의 천사 장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때 주변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어보니, 저 트리와 장식된 천사들은 이미 20년이 넘은 것이라고 한다. 한번 만들어 놓은 것을 해마다 쓰는 것이다. 천사들이 깨끗하게 단장된 것을 보니 얼마나 관리를 철저히 했는지가 느껴졌다. 오른쪽 편에는 아이스링크가 있다. 아이스링크라기보다는 한겨울 꽁꽁 언 웅덩이 빙판 같은 분위기다. 그렇게 좁은 아이스링크지만 사람들은 연방 미소를 지으며 비틀비틀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훈훈하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커다란 캐럴 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캐럴이 아니라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 느낌의 캐럴이라 더욱 궁금해졌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7층 정도 높이와 약 50m 정도 너비의 건물 전체를 무대 삼아 건물에 미리 설치해둔 조명 장치들이 음악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비교하자면 수성못의 분수쇼를 벽 위의 조명장치로 옮겨놓은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처음엔 뉴욕이 연고지가 아닌 이방인일 뿐인 내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까 많은 고민을 했다. 미국의 크리스마스 정서는 대체로 가족과 보내는 분위기라, 같이 일하는 회사 동료들도 모두 일찌감치 휴가를 내고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다행히도 뉴욕인턴십 프로그램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80년 전통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빌려 진행된 이날 행사에선 근무시간이 겹쳐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항공사 인턴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서 기쁨은 배가 되었다. 마니또 게임을 통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고, 인턴 친구들의 기타와 피아노 연주솜씨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인턴들이 자신의 5년 후, 10년 후의 비전을 나누는 순서였다. 미래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목표를 다잡을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따뜻한 파티를 마련해준 인턴십 측의 세심한 배려가 무척 고마웠다.

크리스마스 이브, 교회 동료 아이작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왔다. 이번 주 일요일, 교회에서 칸타타를 한다는 것이다. 예정에 없던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이례적인 결정을 한 거란다. 나와 룸메이트들은 뛸 듯이 기뻤다. 매주 화요일마다 했던 오랜 연습은 둘째 치더라도, 현지인들과 함께 흘린 땀의 결실을 드디어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문제가 된 것은 솔리스트인 피터의 부재였으나 그의 파트를 녹음하는 것으로 대체하였다. 27일 아침, 많은 사람들로 가득찬 교회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칸타타를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공연을 마치고 나서 힘들게 준비한 공연이 끝이 났다는 약간의 허탈감도 들었지만 미국인들과 함께 섞여 무언가를 해 내었다는 성취감에 오늘 하루도 나는 조금 더 자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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