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일 다 기억했지. 저 세상가서 얘기해 줄라꼬"

입력 2010-01-04 10:29:13

일제강점기 위안부 김순악 할머니 日 사과'배상 못받고 저 세상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악 할머니의 장례식이 4일 오전 대구 곽병원에서 시민사회단체장으로 치러진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헌화한 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순악 할머니의 장례식이 4일 오전 대구 곽병원에서 시민사회단체장으로 치러진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헌화한 뒤 "좋은 데로 잘 가라"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수모를 겪었던 김순악(82) 할머니가 2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해 말년에 정신대 문제를 집중 제기했던 고인의 장례식은 대구시민사회단체장으로 4일 오전 영천 은해사 경내에 수림장으로 거행됐다. 은해사는 고인의 뜻을 기리고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49재를 봉행한다. 고인은 지난 12월 7일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투병해오다 이날 숨졌다.

1928년 경산 남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3년 '대구 실 푸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중국 하얼빈과 네이멍구를 거쳐 베이징의 위안소로 끌려가 2년여 간 모진 고초를 겪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압록강을 건너 고국으로 돌아온 김 할머니는 서울, 군산, 여수, 동두천 등지를 떠돌며 살았다.

김 할머니는 1997년 시민사회단체의 도움으로 고향인 경산 백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 정착했다. 200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한 뒤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2004년 일본 나고야 등지에서 벌인 기자회견, 대구경북 지역 대학가의 피해 증언대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집회 등에 참여해 일본 정부의 사과와 피해 배상을 촉구했다.

김 할머니는 2008년 출간한 자신의 일대기이자 위안부 피해의 실증사료인 '내 속은 아무도 모른다카이'라는 책에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자꾸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기억했지, 다 얘기해 줄라꼬"라고 증언하는 등 위안부 피해 증언에 앞장섰다.

한편 김 할머니의 타계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 할머니는 88명만 남게 됐다.

영천'민병곤기자 min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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