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야 놀자] 화폐가치 하락 vs 자산가치 하락

입력 2009-04-21 06:00:00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인한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와 함께 자산가치 하락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은 크게 현금과 같은 화폐자산과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작년에 3천원 하던 자장면이 4천원이 되고, 1억원 하던 아파트가 2억원이 되면 이건 확실히 화폐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즉 화폐가치 하락은 곧 물가상승을 의미하는데 경제학에서는 이를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화폐가치 하락에 대비하기 위하여 실물자산을 가지려 하는데 그 와중에서 투기가 발생하고 거품이 끼면서 부동산 가격은 전체 물가상승률보다 더 많이 오르곤 한다. 이렇게 볼 때 인플레이션 하에서는 대출을 많이 가진 부동산 부자들이 가장 좋아지는 반면, 부동산은 없으면서 화폐자산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제일 불리해지게 된다. 무주택 세입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은 인플레이션과 반대로 자산가격을 비롯하여 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다. 당연히 화폐가치는 높아진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때 가장 좋았던 대출 많은 부동산 부자들이 힘들어지게 되고, 부동산 없이 주로 현금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좋아지게 된다. 이런 면만 보자면 무주택 세입자들은 디플레이션을 반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모든 사람의 소득은 그대로면서 부동산 가격을 비롯한 모든 상품의 가격만 내려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디플레이션은 그렇게 평화롭게 찾아오지 않는다. 극심한 경기침체(depression)와 실업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과 함께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가와 자산가치가 하락할 정도가 되면 이미 주변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고, 문을 닫거나 가동시간을 줄인 점포나 공장들이 즐비하게 된다.

실제 세계대공황시기였던 1929~1933년 기간 중 미국의 물가는 25%, 주택가격은 최대 10분의 1로 하락하였으며, 실질국민소득은 30% 감소하였다. 실업률은 1933년에 25.2%까지 치솟았다. 문제는 이런 경기침체와 실직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무주택 서민에게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을 반길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경제 역시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이미 경기침체기에 진입해 있다. 그러나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 때문인지 경기하강에 비해 실물자산의 가치 하락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쏟아내는 많은 정책들이 과연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동산 부자들이 두려워하는 자산가치의 하락을 막기 위한 것인지 헷갈린다는 점이다.

오영수(경북대 사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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