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사법 60주년'과 여성

입력 2008-09-26 10:53:11

현대 중국 가정에서는 밥 때가 되면 우리로선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 아내는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고 남편은 부엌에서 열심히 프라이팬을 휘두르며 식사 준비하는 모습이다. 아내에게 눌려 사는 남편들을 묘사한 '치관옌(妻管嚴)'은 중국에서 '공처가'를 상징하는 풍자어다.

하지만 194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은 우리 이상으로 철저한 남존여비'남녀유별 사회였다. 여성은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아들 출산과 조상 제사 및 손님 접대를 위해 필요한 존재였다. '여자는 재주(재능) 없는 것이 덕'으로 여겨졌고, 남자에게 복종하는 것이 가장 큰 미덕으로 꼽혔다. 오죽했으면 '닭과 결혼하면 닭에게 복종하고, 개와 결혼하면 개에게 복종하라'는 속담마저 나왔을까.

그러나 新(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듬해인 1950년 최초의 '혼인법'이 공포되고, 일부다처'축첩 폐지 등이 명문화되면서 여성들은 삶을 옥죄던 족쇄로부터 풀려났다.

우리 사회도 그즈음 비슷한 변화의 흐름을 맞았다. 1947년 9월 2일, 대법원의 '처의 능력 제한 불인정' 선고는 광복 이후 법적으로 남녀평등을 실현한 첫 판결이자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남녀평등을 부인하던 구제도로서 그 차별을 가장 현저히 한 민법 제14조는 우리 사회 상태에 적합하지 아니하므로… 동조에 의한 처의 능력 제한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바이다.'

1955년 10월 13일에는 蓄妾(축첩) 행위를 불법 무효로 규정한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본처가 있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맺은 혼인예약은 우리나라의 일부일처 제도에 비춰 公序良俗(공서양속:공공 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위반되는 무효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법적으로 여성의 권리가 한층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26일로 대한민국 사법은 60주년을 맞았다. 법조계가 여성'노동환경 등 5개 분야에서 시대를 바꾼 명판결로 꼽은 22건 중 여성 관련 명판결이 7건으로 가장 많다. '전화교환원 정년 규정은 남녀차별'(1988), '유책 배우자에게도 재산분할청구권 인정'(1993), '직장 내 성희롱 첫 인정'(1998), '여성 종중원 인정'(2005),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용'(2006)이 잇따랐다. '고개 숙인 남자'시리즈 등 넘쳐나는 女强男弱(여강남약) 세태 풍자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요즘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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