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로 읽는 한권]로빈슨 크루소

입력 2008-09-24 06:00:00

로빈슨 크루소는 동서양의 남녀노소가 다 알 법한 유명인이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그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첫째,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를 실존했던 인물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둘째, 사람들은 그가 '무인도에서 혼자 살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의 경우야 워낙 소설 『로빈슨 크루소』가 재미있고 사실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 재미난 오해지만, 두 번째의 착각은 조금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문제일 수 있다.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한 섬은 무인도이기는커녕, 꽤 많은 거주민들이 살고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섬이 무인도였다고 생각하는가? 정답이야 간단하다. 로빈슨 크루소 스스로가 그 섬의 원주민들과 교류하고 동화되는 대신 고지식한 독립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야만인들은 불쌍하게 버림받은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야만인들을 문명화시키기 위해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들에게 정상적인 삶의 방식을 가르치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로빈슨 크루소』 대니얼 디포 지음/윤혜준 옮김/을유문화사/1만2천원/466쪽

청교도의 화신과 같았던 로빈슨 크루소에게 그 섬의 나머지 인간들은 계몽하고 선교하고 문명화시켜야 할 열등한 대상에 불과했다. 그는 그 섬에서 극단적인 소수자였지만, 오히려 그는 스스로를 주류, 정상인, 우월한 사고를 가진 자로 생각한다. 소설에서 그는 결국 섬 전체를 '정상화'(?)시키는 데는 실패하지만, 극적으로 문명사회로 생환하여 부유한 노년을 보낸다는 '미덕의 보상'을 받는다. 작가의 서구, 기독교 중심적 세계관을 훌륭하게 증명해 내는 것이다.

'혼자 살아가는 남자 이야기'라면 리처드 매디슨의 걸작 SF 『나는 전설이다』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 로버트 네빌은 전 인류가 흡혈귀로 변해버린 세계에 홀로 남겨져, 전전긍긍 살아간다. 성경이 말뚝으로 바뀌고, 청교도적 성실함이 문란한 폭음으로 바뀌었을 뿐, 타자를 개조 대상으로 보는 인식은 로빈슨 크루소에게서처럼 로버트 네빌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나는 전설이다』에는 『로빈슨 크루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가의 진일보한 메시지가 있다. 매디슨은 고립된 한 인간의 고독한 사투를 흥미진진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마침내 그가 이르게 되는 놀라운 사유의 전환을 배치함으로써, 서구 중심적 세계관에 따끔한 일침을 놓아 준다. 그래서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여전히 로빈슨 크루소 시절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는 최근의 영화 『나는 전설이다』보다 조금 더 재미있다.

문득 자신이야말로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 로버트 네빌은 이 땅의 신인류를 내다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그들에게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 흡혈귀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파괴돼야 할 아나테마이자 검은 공포였다. …… 이제 나는 전설이야.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디슨 지음/조영학 옮김/황금가지/1만1천원/457쪽

박지형(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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