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 최고봉 대한봉 일출
독도에서는 '예정'이나 '예측'이 없다. 요즘 낮에는 날이 더워서 하루 서너번씩 바닷물에 뛰어들었는데 저녁나절 샛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밤새 보일러를 돌려야 했다. 전기를 일으키는 발전기 소리가 꼭 배의 엔진 소리와 같아 늘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어업인숙소 계단 밑까지 이어진 동굴은 파도가 드나들며 종일 천둥 소리를 낸다. 간밤에 물결이 좀 높다 했더니, 동굴 파도소리는 밤새 벽체를 뒤흔든다. 때문에 독도에 들어온지 보름이 지나도록 거의 매시간 눈을 뜨는 토막잠을 자고 있다.
21일 오전 5시30분. 독도의 아침은 장막을 휙 걷어 젖히듯 불쑥 찾아온다. 밤새 곧은 빛줄기를 쏘아대며 서도(西島) 옆구리를 훑던 등대불도 어느새 꺼져있다. 흐릿한 윤곽만 보이던 동도(東島)가 한순간에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대한봉(大韓峰·해발 168.5m의 서도 최고봉)을 오른다. 산중턱까지 이어진 290개의 계단은 거의 70도의 급경사이다. 제 아무리 담력이 좋아도 중간중간 매어놓은 밧줄을 잡지 않고는 오르지 못한다. 7부 능선 즈음에 두어 평 정도 되는 평평한 곳이 있는데, 그곳이 일출 감상의 최고 명당이다.
옆 사면을 비켜돌아, 칼등 같은 바위를 타고 물골(독도 유일의 물이 나는 샘) 쪽으로 넘어가는 길도 있지만, 그 아래는 130여m의 낭떠러지이다. 그 끝에 서면 무릎이 오그라들어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바윗돌을 움켜잡게 된다.
독도에서 수평선 위로 둥글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마다 대한봉을 오르지만 해가 뜨는 곳은 안개가 끼어 있기 일쑤이고, 한 곳이 붉게 물든다 싶으면 어느덧 해가 불쑥 솟아올라와 있다. 아무튼 국토의 최동단 망망대해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늘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기자가 왜 이곳에 서있는가를 되새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한봉은 하산길(차라리 '하강길'이다)도 수월찮다. 워낙 가팔라서 카메라 배낭을 메고 한발한발 내려올 때마다 오금이 저린다. 대한봉에 오른 50대 후반의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60줄에만 들어섰어도 이곳을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벅찬 감회에 젖었다.
땀에 흠뻑 젖은채 산을 내려오면 빨랫줄에 걸린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닷물에 뛰어든다. 더위도 더위지만 산책이나 조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여기서는 멱감는 것이 유일한 운동이다. 바닷물에 들어가 개헤엄 치노라면 내고향 청도의 개천과 독도의 바다가 오버랩되곤 한다.
깊이 모를 바닷물 속으로 내 어린시절이 투영되고, 지금 독도의 시린 바다에 온몸을 담그고 있는 내 가슴에 뜨거운 불기둥이 솟구친다. 한 길 바다 밑바닥의 희고 검은 몽깃돌들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물결따라 춤추는 해초들도 그렇고, 삿갓조개와 갯고둥도 저마다 바쁜 일상을 시작했다. 나는 지금 독도에서의 본격적인 삶을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독도에서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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