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독도] 동쪽 끝 붉은 태양 '대한의 일편단심'

입력 2008-09-22 09:16:09

서도 최고봉 대한봉 일출

▲ 22일 오전 6시 10분, 동도 옆 구름 사이로 아침 해가 붉게 솟아오르고 있다. 서도 대한봉 중턱에서 촬영.
▲ 22일 오전 6시 10분, 동도 옆 구름 사이로 아침 해가 붉게 솟아오르고 있다. 서도 대한봉 중턱에서 촬영.

독도에서는 '예정'이나 '예측'이 없다. 요즘 낮에는 날이 더워서 하루 서너번씩 바닷물에 뛰어들었는데 저녁나절 샛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밤새 보일러를 돌려야 했다. 전기를 일으키는 발전기 소리가 꼭 배의 엔진 소리와 같아 늘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어업인숙소 계단 밑까지 이어진 동굴은 파도가 드나들며 종일 천둥 소리를 낸다. 간밤에 물결이 좀 높다 했더니, 동굴 파도소리는 밤새 벽체를 뒤흔든다. 때문에 독도에 들어온지 보름이 지나도록 거의 매시간 눈을 뜨는 토막잠을 자고 있다.

21일 오전 5시30분. 독도의 아침은 장막을 휙 걷어 젖히듯 불쑥 찾아온다. 밤새 곧은 빛줄기를 쏘아대며 서도(西島) 옆구리를 훑던 등대불도 어느새 꺼져있다. 흐릿한 윤곽만 보이던 동도(東島)가 한순간에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에 눈을 뜨면 대한봉(大韓峰·해발 168.5m의 서도 최고봉)을 오른다. 산중턱까지 이어진 290개의 계단은 거의 70도의 급경사이다. 제 아무리 담력이 좋아도 중간중간 매어놓은 밧줄을 잡지 않고는 오르지 못한다. 7부 능선 즈음에 두어 평 정도 되는 평평한 곳이 있는데, 그곳이 일출 감상의 최고 명당이다.

옆 사면을 비켜돌아, 칼등 같은 바위를 타고 물골(독도 유일의 물이 나는 샘) 쪽으로 넘어가는 길도 있지만, 그 아래는 130여m의 낭떠러지이다. 그 끝에 서면 무릎이 오그라들어 자신도 모르게 옆에 있는 바윗돌을 움켜잡게 된다.

독도에서 수평선 위로 둥글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마다 대한봉을 오르지만 해가 뜨는 곳은 안개가 끼어 있기 일쑤이고, 한 곳이 붉게 물든다 싶으면 어느덧 해가 불쑥 솟아올라와 있다. 아무튼 국토의 최동단 망망대해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늘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기자가 왜 이곳에 서있는가를 되새겨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한봉은 하산길(차라리 '하강길'이다)도 수월찮다. 워낙 가팔라서 카메라 배낭을 메고 한발한발 내려올 때마다 오금이 저린다. 대한봉에 오른 50대 후반의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60줄에만 들어섰어도 이곳을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벅찬 감회에 젖었다.

땀에 흠뻑 젖은채 산을 내려오면 빨랫줄에 걸린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닷물에 뛰어든다. 더위도 더위지만 산책이나 조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여기서는 멱감는 것이 유일한 운동이다. 바닷물에 들어가 개헤엄 치노라면 내고향 청도의 개천과 독도의 바다가 오버랩되곤 한다.

깊이 모를 바닷물 속으로 내 어린시절이 투영되고, 지금 독도의 시린 바다에 온몸을 담그고 있는 내 가슴에 뜨거운 불기둥이 솟구친다. 한 길 바다 밑바닥의 희고 검은 몽깃돌들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물결따라 춤추는 해초들도 그렇고, 삿갓조개와 갯고둥도 저마다 바쁜 일상을 시작했다. 나는 지금 독도에서의 본격적인 삶을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독도에서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