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권의 성격은 재산권과 가격에 대한 태도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재산권이 자본주의의 바탕이고 가격이 시장경제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노 정권의 경제정책에서 가장 문제적이었던 부분은 주택 가격을 세금으로 누른 조치였다. 치솟는 집값은 공급의 부족을 가리켰으므로, 정부는 주택의 공급을 제약하는 요인들을 없애서 공급을 크게 늘려야 했다. 그러나 노 정권은 헌법의 정신에 어긋날 만큼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골랐다. 그런 방안은 재산권을 심중하게 침해했을 뿐 아니라 시장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사회주의를 추구했던 노 정권의 성격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
걱정스럽게도, 재산권과 가격에 대한 현 정권의 태도는 명확하지 못하다. 현 정권의 첫 작품은 통신 요금을 낮추겠다는 약속이었다. 이어 서민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재화들의 가격을 손수 챙기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선언이 나왔다. 근자에는 정부에서 외환시장에 자주 개입했다. 이런 조치들은 모두 가격에 대한 부당한 통제였고, 필연적으로 실패했다. 설령 단기적으로 효과를 보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해로웠을 터이다.
가격은 한 재화가 다른 재화들에 대해 지닌 상대적 가치다. 재화의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그것을 덜 쓰고 더 만든다. 내리면, 더 쓰고 덜 만든다. 덕분에 사람들은 가장 싼 재화들을 이용하게 되어, 경제의 효율이 한껏 높아진다. 시장경제에서 신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하는 가격이다.
정부가 어떤 재화의 가격을 일부러 낮추면, 공급은 줄고 수요가 늘어서, 불균형이 생긴다. 이런 불균형은 당연히 여러 문제들을 낳는다. 무엇보다도, 경제의 효율이 떨어진다.
이번에 정부가 에너지 회사들에 보조금을 주어 에너지 가격을 낮춘다는 방안은 전형적이다. 연료의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으므로, 에너지 가격이 오른 것은 자연스럽다. 그래서 모두 에너지에 더 많은 값을 치러야 하고 덜 쓰는 불편을 견뎌야 한다. 이 문제를 쉽고 편하게 푸는 방안은 없다. 만일 정부가 에너지 가격을 억지로 낮추면, 에너지의 소비는 적절한 수준까지 줄어들지 않아서, 사회적 손실이 나온다.
정치 지도자는 그런 사정을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길은 에너지 가격을 시장 상황에 맞게 높이는 길뿐임을 지적하고 어려움을 함께 견디자고 설득해야 한다.
아쉽게도, 이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에너지 회사들에 세금으로 보조금을 주는 방안을 골랐다. 이 방안은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격은 그대로다. 낮아진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실제로는 시민들이 세금으로 부담한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소비자들이 싸게 산다면, 높은 가격이 불렀을 절약이 나오지 않는다. 철학적 차원에선, 에너지를 쓰는 사람들과 세금을 낸 사람들이 상당히 다르므로, 정의의 문제도 나온다. 물가 관리에서 손쉽게 치적을 내고 싶은 이 대통령의 마음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이 방안은 너무 문제적이다.
더 거둬진 세금은 정부가 시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니, 당연히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대통령이 단기적 치적을 높이려고 에너지 회사들에 대한 보조금으로 쓰는 것은 개인적으로 부도덕하고 사회적으로 해롭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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