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엽기 미술

입력 2008-09-19 10:50:01

독일 태생의 미국 미술작가 키키 스미스는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특히 체액 분비나 배설 등 신체의 사실성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작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벌거벗은 여인이 손과 무릎을 땅에 댄 채 제 몸에서 나온 내장을 꼬리처럼 길게 늘어뜨리며 끌고 가는 '이야기'(1992), 동물의 성기에 두 발을 집어넣고 있는 여성을 묘사한 '폭발'(2002) 등의 작품들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반면 미국 출신의 로버트 고버는 남성의 몸을 대상으로 성적 욕망, 죽음 등의 문제를 탐색하고 있다. 특히 네 남자의 혼음 장면을 네온사인으로 표현한 'Four Figures' 같은 작품들은 일견 매우 퇴폐적임에도 불구, 독특한 표현방식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어딘가 반사회적이고 비정상적이며, 일탈과 퇴폐, 게다가 공격적이고 저항적이면서도 왠지 비감스럽기도 한 복잡미묘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일단의 작품들. 이른바 애브젝트(abject) 미술 작품들이다. 쉽게 말해 엽기 미술이다.

영국 현대미술의 독보적 존재인 데미언 허스트(43) 또한 엽기 분야에선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하다. 소'돼지'상어 등 죽은 짐승을 통째로 혹은 반으로 가르거나 토막내 방부제인 포름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수족관에 담가 버리는 방식이 그의 전매특허다. 일견 잔혹하게 비쳐지는 그의 설치 작품들은 관객들을 전율과 분노,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일쑤다. '미스터 죽음'이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그럼에도 허스트의 작품들은 엄청난 고가에도 아랑곳없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하긴 한때 '약국'이란 카페를 운영하다 문을 닫은 뒤 술잔에서 화장실 문짝까지 경매에 부쳐 한화로 약 220억 원을 벌었다 하니 이재의 귀재라 할 만하다.

며칠 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도 무려 1천978억 원어치를 팔아치워 지금껏 단일 작가의 최고 경매기록이었던 1993년 피카소 작품의 약 1천300억 원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최고가에 팔린 '황금 송아지'(약 215억 원) 역시 대형 수조의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실제 소를 집어넣은 작품. 머리 위에 14K 황금 원반을 얹고 눈을 감은 채 서있는 소의 모습이 '미술 작품'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준다. 죽은 소에 대한 연민과 함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현대사회의 物神(물신) 숭배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은 이 느낌, 착각일까.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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