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대구 달서구 이곡동 성서공단. 늦더위 땡볕만 부지런히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을 뿐 거리에는 인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간판이 있긴 한데. 못 찾으실 거예요"라는 길안내를 허투루 여겼던 탓에 여러 차례 주변을 맴돌아야 했다. 공단 안쪽으로 좀더 들어가자 간판도 찾기 힘든 작은 식당 하나가 보였다. 창고인 것 같기도 하고, 구멍가게 같기도 했다. 공장 밀집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밥집과는 다른, 조금은 희한한 구조의 식당이었다.
식당에서 만난 배재순(43·여)씨도 '몸에 이상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수척해보였다. 칠부바지를 입은 배씨의 다리는 부어 있었지만 얼굴은 '피골상접'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였다. "추석연휴라고 공장들이 오늘까지 쉬어서요. 우리도 오늘은 장사를 안 해요"라며 배씨는 식당 안으로 이끌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좁은 식당, 주방 쪽으로 여닫이 문이 보였다. '설마 이곳에…'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실은 그랬다. 문을 열자 배씨가 4년간 간호해온 남편 김종우(45)씨가 누워 있었다. "파리가 들어오면 환자의 호흡기에다 알을 깐다는 얘기가 있다"며 배씨는 닫힌 방문을 확인, 또 확인했다.
"영화 '람보' 아시죠? 무거운 총을 양손에 들고도 자기는 안 죽는… 말 그대로 '람보'였어요. 181㎝, 100㎏의 거구 '람보'가 지금은 방 한 구석에 누워 눈만 껌뻑이지만요."
한 건설회사의 하자보수팀 직원으로 일하던 남편 김씨는 지난 2004년 11월 2층에서 추락, 머리를 크게 다쳐 지금껏 병상에 누워있다. 뇌출혈과 두개골 골절 등으로 두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한 '람보' 남편의 활동 공간은 고작 4㎡ 남짓한 단칸방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곰팡이가 슬어 닦아낸 흔적이 역력한, 창고로 쓰이던 곳에 단열재를 넣어 급히 개조한 방이었다. 식당 딸린 방인지, 방이 딸린 식당인지 분간이 안 되는 이곳이 부부의 안식처였다.
"52㎡(16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살 때가 행복했지요. 다시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김씨가 쓰러진 이후 배씨는 살고 있던 집을 내놓아야 했다. 김씨의 회사 측에서 김씨의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목격자가 없었는데다 머리를 다쳐 식물인간이 돼버린 남편을 '나몰라라'하더군요"라며 배씨는 울먹였다. 5개월 만에 눈을 뜬 남편. 남편은 눈과 귀만 살아있을 뿐 사지를 쓸 수 없었다. 그마저도 기적이라며 기뻐했다는 배씨.
문제는 앞날이었다. 남편 앞으로 들어둔 보험금 덕분에 4천만원에 가까운 병원비는 해결했다. 자기도 모르게 들어둔 특약사항으로 향후 10년간 매달 100여만원의 보험금도 나온다. 그 탓에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했던 배씨는 식당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 달에 남편 앞으로 들어가야 할 돈이 100만원을 훌쩍 넘었기에 보험금에만 기대 살 수는 없어서였다.
더 큰 문제는 배씨도 몸이 성치 않다는 것. 최근 병원으로부터 "심장부정맥을 앓고 있기 때문에 평생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남편과 자신 앞으로 들어갈 병원비 걱정부터 덜컥 들었다는 배씨. "하늘이 부르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부디 남편보다 몇 달만이라도 더 늦게 데려가 줬으면 하는 게 소망"이라는 배씨의 앙다문 어금니가 도드라졌다.
얼마나 손을 대지 않았을까. 부부의 결혼식 사진과 신혼여행 사진이 담긴 사진첩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남편이 쓰러진 뒤로는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는 배씨는 급히 얼굴을 돌렸다. 배씨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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