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들의 책사 흥선대원군
대원군은 강력한 척화정책을 선택했다. 서구열강들의 개방압력에 맞서 일체의 타협을 거부함으로써 끊임없는 마찰이 일었다. 1866년 고종 재위 3년 되던 해, 대원군은 이른바 '병인박해'로 불리는 천주교 탄압을 가했다. 이에 프랑스는 자국 선교사 살해책임을 물어 함대를 파견해 강화도를 공격했다.
또 1871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가 통상을 요구하며 재물포를 약탈하다가 평양군민들과 충돌, 침몰하는 바람에 선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빌미로 미국이 군함을 보내 강화도를 공격하는 '신미양요'가 발생했다. 두 차례 침입을 겪고 난 후 흥선대원군은 서구열강에 대한 굳은 경계심과 함께 능히 그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대원군의 지시로 세운 척화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의 침범에 맞서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책 '제왕들의 책사' '고종편'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요약했다. 이 책은 어떤 입장을 반영한다기보다 역사적 자료에 근거에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고 있다. 말하자면 앞에 나타난 흥선대원군의 서구열강에 대한 태도와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일련의 사건은 필자의 의견이 아니라 사실인 것이다.
병인양요에서 조선은 외규장각 도서와 여러 상자의 은괴를 잃었고 강화도 관아 건물과 도서 6천여 권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다만 소총병 500여명을 이끌고 정족산성에 매복해 있던 양헌수가 프랑스 정찰대 150명을 공격해 6명을 사살하고, 60여명을 부상 입혔다.
신미양요 때는 광성진 전투가 가장 치열했다. 이 전투에서 조선은 전사자 350명, 부상자 20명이었다. 미국 측은 전사자 3명, 부상자 10여명이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조선은 외세를 물리쳤지만 전투에서는 패배했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프랑스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인정하는 계기는 돼야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선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두 차례 전투를 치르면서 조선은 '능히 그들을(서양을)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흥선대원군은 그만의 기질을 가진 개인이면서 당시 조선사회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당시 조선 정치권과 민중의 외세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와 인식 수준은 '흥선대원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른바 '소중화' 의식에 사로잡힌 조선은 중국(청나라) 이외의 모든 나라를 한수 아래로 보았다. 설령 그들의 무기가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한낱 오랑캐에 불과하며, 문화로 그들을 압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더 나아가 그들의 높은 과학수준을 '야만적인 힘'으로 간주했다.
일반적으로 과학과 무력의 수준은 그 나라의 문화적 수준과 엇비슷하다. 한쪽만 도드라진 나라나 시대는 드물고, 있다고 해도 길지 않다. 흥선대원군(조선)은 나와 적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직 '나'를 중심으로 '상대'를 보았던 것이다.
최근에 외교부가 2007년 상반기 세계 75개국에서 발간된 353개 지도를 분석해 동해수역 표기 현황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353개 지도 중 '동해'를 단독 표기한 지도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일본해로 단독 표기한 경우가 전체의 74.2%, 동해-일본해를 동시에 표기한 경우는 23.8%, 무표기가 2%라고 한다. 동해와 독도를 모두 단독으로 표기한 지도는 우리나라 지도뿐이라고 한다.
어째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세계 각국의 지도 제작자들이 모두 미쳐버렸을까? 아니다. 착각하는 쪽이 있다면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일 것이다. 현대뿐만 아니라 근대 지도제작자들 역시 '동해'를 대부분 '일본해'로 단독표기하거나 '동해-일본해'로 병기했을 것이다. '동해'로 표기돼 우리나라 언론에 등장하는 지도는 아주 드문 경우일 것이다. (다 확인해보지 않았으니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만약 기자가 어떤 나라의 지도 제작자이고 100년 혹은 200년 전 '동해'를 탐사하고 이름을 붙였다면 '일본해'라고 표기했을 것이다. 정치적 배려심이 깊거나 조선 측의 상당한 도움을 받아 탐사했다면 '일본해' 아래 '동해'라고 쓰거나 '동해'라고 표기했을 것이다.
이건 애국심의 문제가 아니다. 동해 서해 남해라는 명칭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이름인가? 예컨대 근대 프랑스의 어떤 지도 제작자가 동해를 탐사하고 동해, 서해, 남해라고 표기했다면 주변 사람들이 비웃지 않았을까? 그가 '동해'라고 표기한 지도를 턱 내놓았을 때 주변 학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동해(east sea)라니! 대체 어느 동쪽 바다를 말하는 거야?'
이에 반해 '일본해'는 일본 근처 어디에 있는 바다라는 사실을 단번에 드러낸다.
세상에 국가가 한국뿐이라면 동해 서해 남해는 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나라 중에 하나일 뿐인 우리나라를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하고 동해 서해 남해라고 했으니 우리바다의 이름조차 지키지 못하는 자충수를 둔 셈이다.
만약 우리가 '동해'를 지키고 싶다면 'east sea'라고 표기해달라는 요구를 철회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통할 만한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홍보해야 한다. '동해'를 고집하는 것은 태평양을 '먼 동해'라고 우기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한국은 세상에 하나뿐인 나라이며 또한 여러 나라 중에 하나일 뿐이다. 망해버린 '조선'과 세계의 지도에서 사라지고 있는 '동해'는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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