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고향역 '금구역(金龜驛)'을 아시나요?

입력 2008-09-12 08:47:35

김천.구미 역명 놓고 두 도시 대립/금빛 거북 뜻 담긴 金龜 어떨까

내일 모레면 추석이다. 귀성인파와 차량행렬이 텔레비전 화면을 또 와글와글 메울 것이다.

고향 가는 길, 그 귀성 풍속도도 아시다시피 이미 많이 변했다. 열차에만 의존하던 시절엔 그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끌어당기는 '고향의 힘'이 있었지만, 핵분열처럼 따로따로 자가용을 탄 지금은 사람들의 얼굴엔 고향에 대한 설렘이 별반 엿보이지 않는다. 농촌인구, 혹은 농업이 '국력'의 뒷전으로 물러나 앉은 오늘날의 표정이 그런 것이다. 그렇듯 지금의 핵가족 시대를 사는 늙은이들은 누구나 우두자국 같은 '실향'의 흔적이 마음 한쪽 구석에 찍혀 은근히 아플 것이다. 지난날 명절 기간에 벌어지던 마을 공동체 儀式(의식)이나 축제들, 그 '옛 추억'이나 희미하게 떠올리며 '주름진 고향'으로 남아있을 뿐.

귀성이라는 말, 명절이라는 말엔 그러나 아직도 길고 느린 기차가 그려진다. 그 아련한 꼬리, 기적 소리 끝엔 마침내 그리움의 입구인 '고향역'이 나온다. 고향역이란 이름의 역은 사실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세상의 모든 역은 그 누군가의 고향역이기도 한 것이다. 가수 나훈아의 노래처럼 '달려라 고향 열차, 그리운 가슴 안고' 당도하던 고향역들은, 그 완행의 '고향열차'들은 그러나 지금은 하나 둘 용도폐기 되고 있다. 가까이는 대구시 수성구 고모동 소재의 간이역, '고모역'이 폐역이 돼버렸고 멀리는 강원도 정선의 '구절리역'으로 들어가는 객차 두 칸짜리 비둘기호가 자취를 감추었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한나절생활권으로 치닫는 판에 그것은 거스를 수도, 거스를 일도 아닌 불가피한 변화이다. 산업과 문명의 발달로 생긴 편익은 당대의 주역들 앞에 차려진 밥상 같은 것, 굳이 물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저 편', 그 옛날의 고향역 언저리에 오래 머물고 있다.

'사평역'이 그렇다. 곽재구 시인이 쓴 유명한 시의 제목인데,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읽을 때마다 나의 향수를 달래준다. 그리고 나는 그 '막차'가 영영 오지 말았으면 하는 심사가 된다. 잠시만 더 '톱밥 난로의 온기'를 쬐며,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시며 또 어디론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어느 청춘의 '뼈아픔'을 녹이고 싶은 것이다.

사평역의 '오지 않는 막차'엔 고향의 따스한 정이 듬뿍 실려 있다. 그러나 요즘엔 '철길'에도 '귀향의 옛 맛'을 저버리는 씁쓸함이 있다. 고속열차 KTX가 운행된 뒤부터 개인적으로 생긴 사소한(?) 불만이다. '천안·아산'이라는 역 이름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것인데, 역 이름을 두고 양 지역이 벌인 줄다리기가 무척 구차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역 이름을 임의로 '천산역'이라 줄여 부르고 있다. 역 이름이란 해당 지역을 '안내'하는 기능도 중요하겠지만 부르다보면 익숙해지고 정다워지는 그 '고유성'도 간과할 일은 아니다. 새로 짓는 '고향역'들이 현대화, 대형화되는 것은 반길 일이기도 하지만, 그 이름이 양 지역 간에 '가칭'처럼 어정쩡하게 씹혀있는 모양새는 영 보기에 좋지 않다.

김천-구미 사이에 곧 들어설 고속철도 역 이름 역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영락없는 천안·아산역의 재판이다.

이 역은 특히 경제 발전을 염두에 둔 양 지역의 기대가 크다. 서로 양보가 되지 않는 점 이해가 되지만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의견을 내놓고 싶다. 즉, 富(부)의 대명사인 '금'과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을 합친 대형 '순금거북(金龜)'을 역 이름으로, 마스코트로 삼자는 것이다. 금빛(김천)과 거북(구미)의 조화가 아주 멋질 것 같다. 이 역이 들어설 지점과 연접한 성주군 초전면이 필자의 고향이다. 앞으로 내 고향 사람들도 명절엔 주로 이 역을 이용하리라고 본다. 그래서 개인적인 애착도 간다. 말하자면 이 역은 나의 '고향역'이 되는 셈. 나는 앞으로 김천·구미역 역세권 전역을 하나의 '고향'으로 묶어 '금구역(金龜驛)'으로 부를 작정이다.

그러고 보니 고향역, 고모역, 사평역, 천산역, 금구역 모두 실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없기 때문에 아름답게 그릴 수 있는 것이 사람의 고향이요, 고향역일 것이다.

문인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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