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일자리가 먼저다

입력 2008-09-11 10:58:42

고용 없는 성장, 우리경제 고질병/대기업부터 일자리 창출 나서야

예나 지금이나 일자리 창출은 정권의 최대 화두다. 국민들의 밥그릇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후보자나 정당의 첫 번째 공약은 당연 일자리 창출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1년에 60만 개씩 5년간 30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해 당선됐다. 민주당도 연간 5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맞불을 놨지만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기에는 힘겨웠다.

지난해 국민들은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능력'을 꼽았다.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엔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대통령 이명박'이 제격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고용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는 컸다.

이 대통령 취임 200일을 넘기면서 이러한 기대가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연일 일자리 창출을 강조하고 있지만 각종 고용 통계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8월 취업자 증가 규모는 전년 동월 대비 15만9천 명에 그쳤다. 취업자 수 증가 폭은 6개월째 내리 10만 명대다. 국민 일자리 창출이 대선 공약 60만 명은커녕 정권 출범 초기 제시한 35만 명, 지난 7월 '하반기 경제 운용 방안'을 발표하면서 설정한 20만 개에도 턱없이 적다. 지난달 고용률은 지난해에 비해 0.2% 포인트 하락했고 청년실업률은 7.1%로 되레 0.4% 포인트 높아졌다.

지난 2분기 고용탄력성은 0.15를 기록, 사상 최악이었다. 고용탄력성은 취업자 수 증가율을 GDP 성장률로 나눈 것이다. 수치가 낮아질수록 경제가 성장해도 취업자 증가세는 둔화되는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현실화함을 의미한다. 이 수치는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0.3은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1분기 0.29로 떨어졌고 올 2분기 0.15까지 주저앉았다. 고용탄력성이 0.3일 때 경제가 5% 성장하면 3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하지만 지금은 15만 개밖에 창출하지 못한다. 15세 이상 노동가능인구는 매년 40만 명 이상씩 늘고 있는데 그 중 25만 명은 일자리가 없어 놀아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이를 잘 드러내는 자료를 내놨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 증가율은 5%로 29개 OECD 회원국 가운데 5위를 기록했지만 고용률은 겨우 0.1% 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다른 회원국들은 달랐다. 우리나라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낮은 선진국들도 고용률 증가 폭은 우리나라를 훨씬 웃돌았다. OECD 평균이 0.4%였다. 고용 없는 성장이 한국사회에서만 고착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 없는 성장이 가져오는 문제는 심각하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고 계층 간 갈등을 촉발한다. 그렇다고 이를 지난해 통계라고 무시해 버릴 수도 없다. 이미 보았듯 새 정부 들어 고용지표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는 18일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이 새 정부 출범 후 두 번째 회동을 한다. '2차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다. 이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 줄 것만 주고 받을 것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경제 살리고 일자리 만들라고 욕먹어가며 특별사면까지 해줬더니 정작 보따리 풀 생각은 않고 투자와 고용창출을 명분으로 규제완화 등 제 요구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30대 기업은 일자리 30만 개를 줄인 것으로 추산된다. 매출, 순이익 모두 수 배~수십 배씩 늘 동안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대기업이 앞장서야 한다.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늘려야 협력 업체들이 살고 일자리도 덩달아 늘어난다. 금고에 돈을 쌓아두고 있으면서 규제가 심해 투자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도 "통상적인 일자리 창출 대책으로는 지금의 위기를 넘길 수 없다"며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주문했다. 국민적 일자리 창출을 위해 민관의 실질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때다.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도 헛일이다.

정창룡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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