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 호객·즉석흥정…국제적 명물로 뜬 日 아메요코 시장

입력 2008-09-09 08:51:03

[재래시장 르네상스] ⑤도쿄 아메요코 시장

▲ 도쿄 아메요코 시장은 호객과 가격 흥정이라는 전통 재래시장 판매 방식을 고수하며 재래시장을 살려가고 있다. 호객행위와 난전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시장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재협기자
▲ 도쿄 아메요코 시장은 호객과 가격 흥정이라는 전통 재래시장 판매 방식을 고수하며 재래시장을 살려가고 있다. 호객행위와 난전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이 시장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재협기자
▲ 일본 전통 식품류만을 전문으로 파는 교토 니시키 시장은 정찰제 및 현대화를 통해 특색 있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재협기자
▲ 일본 전통 식품류만을 전문으로 파는 교토 니시키 시장은 정찰제 및 현대화를 통해 특색 있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재협기자

"재래시장의 번잡함과 불편함이 또 다른 경쟁력입니다."

일본 도쿄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아메요코 시장. 이곳에서는 깔끔하고 차분한 일본의 모습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복잡한 통행로와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기 위해 목소리를 올리는 상인들의 호객이 뒤엉켜 마치 1970, 80년대 대구 서문시장이나 칠성시장을 찾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역으로 아메요코의 이러한 모습은 도쿄의 명물이 되고 있다. 현대의 일본답지 않은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이 오히려 호기심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즐겨찾는 쇼핑코스로 자리 잡았다.

◆일본답지 않은 명물시장

도쿄 우에노역 건너편에 위치한 아메요코 시장, 철로가 놓여진 고가다리 밑을 따라 600여m에 500여개가 넘는 상점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아메요코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이 상인들의 호객 행위. 세일이란 팻말과 가격표를 들고 상점마다 지나가는 행인의 발길을 붙잡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어떤 시장에 가더라도 가격정찰제가 자리 잡고 있는 일본이지만 아메요코만은 예외다. 물품마다 가격표가 적혀 있긴 해도 흥정 여부에 따라 20~30%의 할인이 가능하다.

정찰제가 아닌 흥정이 아메요코 시장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지르고 손님을 모은 뒤 즉석에서 가격 흥정이 진행된다.

시장의 외형 또한 일본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붕을 덮는 아케이드도 없으며 일부 상점은 난전까지 펴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철로 소음에다 사람들이 뒤엉키고 여름철에는 무더위에 그대로 노출돼 있지만 그래도 아메요코는 항상 인파로 가득 차 있다.

하루에 평균 10만명이 아메요코를 찾고 있으며 성수기 때는 50만명까지 늘어난다. 이 중 30% 이상이 외국이나 타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다.

상인연합회 간부인 후카자와씨는 "일본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운 흥정이 시장을 찾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며 "시설 현대화가 되지 않아 불편함은 있지만 이 또한 전통적인 재래시장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아메요코의 또 다른 경쟁력은 흥정의 재미와 물건값이 싸고 취급 품목이 다양하다는 점.

대다수 물품이 대형소매점이나 백화점에 비해 10~30% 저렴하며 건어물에서 의류, 귀금속, 건강용품, 잡화까지 말 그대로 없는 물건이 없는 곳이 아메요코다.

또 시대 추세에 따라 점포 구성도 바뀌고 있으며 최근에는 골프용품을 비롯한 스포츠 전문용품점들이 잇따라 들어서 20, 30대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호객행위가 경쟁력" 아메요코의 역발상

전통 재래시장을 표방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아메요코의 역사는 이제 5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2차대전 패전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을 상대로 형성된 암시장이 아메요코 시장의 출발이다.

대형소매점과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수백년 이상된 재래시장이 하나 둘 문을 닫았지만 신흥시장인 아메요코는 오히려 '전통'을 무기로 명성을 지켜가고 있는 것.

여기에는 아메요코 시장 상인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다른 재래시장같이 손님의 발길이 줄고 매출이 떨어진 1990년대에 들면서 상인들 간 회의를 통해 질서 있는(?) 호객행위를 시작한 것. 즉 시장을 살리기 위해 대형소매점이나 백화점은 할 수 없는 재래시장만의 호객과 가격 흥정을 마케팅 기법으로 채택한 것이다.

상인연합회 후카자와씨는 "호객을 적극적으로 시작한 후 반응이 좋아 이후부터 여러 이벤트를 기획해 방문객들을 끌어들이려 애쓰고 있다"며 "다양한 이벤트 이후 국내외적으로 시장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밝혔다.

10여년 전부터 미래의 고객인 전국 중·고교생을 초청해 상인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상점마다 수십개의 상품을 지정해 시기를 알리지 않고 실시하는 깜짝 세일이 연중 열리고 있다.

시장 홍보도 대형 유통점만큼 적극적이다.

각종 잡지에 홍보 광고를 내고 있으며 방문객을 위해 취급 품목과 점포 위치를 기록한 시장 지도와 영어 안내 책자를 배포하고 있다. 휴대전화 메시지를 통해 고객들에게 쇼핑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체계적인 마케팅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상인 간의 유대감을 높여 나가는 것도 아메요코 시장의 특징.

여성상인의 날이나 청년상인의 날 등을 지정해 매년 단체여행, 단합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자발적인 회비 납부와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시장 홍보를 위한 단체 이벤트를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500여개 점포가 있는 아메요코 시장은 현재 위치별로 시장 관리를 위한 7개 상인조합이 있으며 시장 전체 마케팅이나 대외 홍보를 위해 조합들이 구성한 상인연합회가 있다.

아메요코 시장은 현재의 성공을 발판으로 일본뿐 아니라 국제적 시장으로의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관광객을 대상으로 아메요코 시장을 방문 코스에 넣은 관광 상품을 마련해 전통적인 시장의 모습을 팔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 日 전통식품 전문으로 자리잡은 니시키 시장

일본 교토 도심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니시키 시장. 건어물과 생선, 장아찌 등 일본 전통 식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게들이 몰려 있으며 폭 2~3m 정도의 좁은 소로를 따라 120여개의 상점이 위치해 있어 한국 주택가 골목길에서 쉽게 마주치는 동네 시장과 흡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니시키 시장은 교토뿐 아니라 '일본의 맛'을 즐기려는 외국 관광객의 주요 방문 코스로까지 자리 잡은 유명 시장이다. 크지 않은 규모에 전통 반찬류만을 파는 가게들이 몰려있는 흔한 재래시장이 이러한 명성을 얻기까지는 시장 상인들의 부단한 생존 노력이 있었다. 400년이란 오랜 시장 역사에다 변화에 발 빠른 대응을 하면서 전통을 무기로 한 현대식 마케팅에 나선 때문.

30년 전 깔끔한 냉장 시설을 갖춘 슈퍼가 등장하면서 동네 반찬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할 때 니시키 시장은 재래시장으로는 드물게 가격표시제와 소포장제를 도입했다.

한국처럼 부르는 게 값이던 재래시장 가격을 정찰제로 바꾼 것. 또 인근에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손님 발길이 줄어들자 보행로 확보와 아케이드 설치 등 현대화 작업을 했으며 이어 시장 브랜드화 사업에 나섰다.

가게마다 시식코너를 만들고 일부는 식당까지 차려 눈으로 보고 입으로 즐길 수 있는 테마 상품을 만든 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니시키 시장=일본 전통 음식 체험이란 등식을 만들어 낸 것. 지금도 시장 내 빈 점포가 생기면 상인연합회가 중심이 돼 시장 이미지에 맞는 가게를 입점시키는 등 전통 시장의 맛을 지키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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