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60주년을 기념하는 크고 작은 잔치가 8월을 지나면서 한고비를 넘긴 기분이다. 건국이라는 용어에서부터 행사의 성격이나 내용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불협화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이 금년 한 해를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건국 60주년 행사의 대부분이 정치적 차원에 집중된 점은 다분히 아쉽다. 따라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취를 일궈낸 기업인들의 역정 또한 정치인들의 그것 못지않게 각별히 평가되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는 백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정치가나 경제인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우리 국민 모두가 賞讚(상찬)의 대상이 되어 아무런 손색이 없다. 아울러 이참에 성공한 대한민국 60년사의 또 다른 주역으로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묵묵히 헌신했던 공직자들을 새삼 기억해 볼 필요도 있다. 물론 모든 관료나 공무원들이 다 그랬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행각을 보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축 대한민국 60년의 뒤안길에 수많은 공직자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에 관련하여 최근 한 권의 자서전이 나와 세간의 주목을 끈다. 저자는 金壽鶴(김수학).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대구시장, 내무부 지방국장, 충남 도지사, 경북 도지사, 국세청장 등의 고위 관직을 지낸 경력의 소유자다. '이팝나무 꽃그늘'은 51년 8개월에 걸친 자신의 공직생활 결산서인 셈이다.
만약 누군가 이 책에 대해 정식으로 서평을 요청한다면 1960년대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보릿고개를 극복하는 旅程(여정)을 이해하거나 새마을운동의 기원과 성과 및 그 변천 과정을 고찰하는 데 있어서 매우 소중한 자료라고 쓰겠다.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국가적 숙원이었던 무렵, 그것은 바로 김수학 선생 자신의 간절한 소원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그는 밥을 먹고 난 이후 좀처럼 뛰지 않았다고 한다. 어른들이 "뛰지 마라, 배 꺼진다"며 야단을 쳤기 때문이란다. 道伯(도백) 혹은 새마을 운동가로서 국민의 가난 救濟(구제)에 대해서는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던 그였지만, 정작 스스로는 늘 가난에 쫓기는 신세였다. 60년간의 결혼 생활 중 이사를 마흔 두 번이나 할 정도였다.
茂庭(무정) 김수학 선생을 대한민국 60년사의 대표적 淸白吏(청백리)로 만든 것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대단히 컸던 것 같다. 그분은 평생 방 둘 부엌 하나인 전형적인 三間(삼간) 시골집에 거주하면서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에게 무엇보다 부정한 금전관계를 주의시켰다. 또한 언젠가 모친이 주위 친척들의 권유에 못이겨 관광버스를 타고 하루 나들이에 나섰다가 차가 논바닥으로 구르는 사고가 났는데, 승객들의 신원조사를 하는 경찰에게 자식이 없다고 계속 우겼다고 한다. 당시 경상북도 도지사였던 아들에게 누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지사의 어머니로서 관광이나 하고 다니는 게 창피스럽기도 해서 그랬다고 한다. 어머니에게는 그게 관광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라고 말할 도리밖에 없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혹은 전직 대통령까지도 걸핏하면 비리에 연루되어 망신당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김수학 선생의 모친은 노심초사 아들이 바르게 살기를 바라며 "배 고프면 집에 오면 된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사실 이 얼마나 쉽고 간단한 공직윤리인가! 이토록 든든한 어머니가 고향 집에 계셨기에 선생은 타지에서 의연하게 나랏일에 매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노모를 멀리 저 세상으로 보내고 자신 또한 팔순을 넘긴 나이에 그가 현역 공직자들에게 남기는 간곡한 부탁은 다음과 같다. "그대들의 청렴한 사고가 곧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요, 그대들의 청렴한 수범이 국가의 발판이 된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 나라의 근간인 공직사회가 건국 60년의 해를 맞고 보내는 마당에 경청하고 명심해야 할 선배의 警句(경구)가 아닌가싶다.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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