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휘의 교열 斷想] 詩 표현 유감

입력 2008-09-08 06:00:00

각종 글의 誤謬(오류)를 바로잡으면서 가장 편한(?) 분야가 있다.

바로 詩(시)다. '詩的(시적) 허용'에 따라 전문가가 쓴 글이어서 표현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절대 고치면 안 되기에 맞춤법이 틀릴 때는 교정자로서 한계를 느끼게 된다.

"할 일없이 담배를 태운다./바둑이가 짖으며 내닫은 길 위로/아무도 한 번 가고는 오지 않는다."라는 이 詩句(시구)에 나오는 '할 일없이 담배를 태운다'가 애매모호하다. 하는 일이 없다는 뜻보다는 흔히 '할일없이'로 잘못 쓰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는 뜻인 '하릴없이'에 가깝지 않을까. "하릴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로 쓰이는 '하릴없이'를 시인이 착오한 것인지 확인할 계제조차도 허용치 않는다.

時調(시조) 또한 시와 같이 예외가 될 수 없다.

"두어 시간 날이 들면 연해 날개를 털고/암컷의 유혹과 경계의 동시성을 띈" 에 나오는 '동시성을 띈'은 '동시성을 띤'의 틀린 표기다.

'띠다'는 용무·사명을 가지다, 빛깔을 가지다, 표정이 드러나다의 뜻을 갖고 있으며 "중대한 임무를 띠다." "비판적 성격을 띤 발언" 등으로 쓰인다.

'띄다'는 '뜨이다'의 준말로 "눈에 띄다"로 활용한다.

표기가 잘못된 시와 시조도 있지만 남영태 시인의 '당신'엔 아름다운 우리말이 수없이 나온다.

"세월이 갈수록/듬쑥한 당신//덩둘한 이 사람을/도두보아 주어 고마워요// 아름드리 커가는 자녀 보며/부부로 인연 맺어/걸어온 이십 성상,/나에겐 너무나 종요로운 당신//도린곁을 걸을지라도/함께 있어 풍요로워요//꾀꾀로 실큼한 생각이 들어도/알심으로 참아주구려//미안하오/여낙낙하지도, 실팍하지도 못하여…/애면글면하다 보면/당신에게 살갑게/느껴질 날 있으리다"

남영태 시인은 우리말에 관해 조예가 깊으며 독자들에게 순수 우리말을 전하려 애쓰는 아름다운 시인인 것 같다.

이 시에 나오는 '듬쑥한, 덩둘한, 도두보아, 종요로운, 도린곁, 꾀꾀로, 실큼한, 알심, 여낙낙하다, 실팍하다, 애면글면, 살갑게' 등 순수 우리말은 사전을 뒤져가며 음미해보면 좋을 듯하다.

요즘 환율폭등, 주가폭락 등 '9월 위기설'로 인해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 어려워서인지 세상살이가 팍팍하다.

'누리' '라온'이라는 순우리말로 이름 붙인 두 딸의 아버지로서 '세상(누리)살이가 즐거웠으면(라온)'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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