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한국경제, 감세가 살려낼까

입력 2008-09-06 06:00:00

지난 1일 기획재정부는 2012년까지 5년간 세금 21조3천억원을 줄이는 정책을 확정했다.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이 골자다. 반면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5년 11월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의 전신)는 '감세정책 주요논점 정리'라는 자료를 통해 경기부양을 위한 감세 정책의 문제점을 반박한 바 있다. 정권이 바뀐 이후 같은 부처의 입장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세금을 낮추면 과연 경기가 되살아날까?

◆감세의 효과는 여전히 논란 중

감세론자들은 세금을 줄여주면 그만큼 쓸 돈이 많아져 국민소득이 늘어난다고 믿는다. 소득세가 낮아지는 만큼 근로자는 열심히 일하게 되며, 기업은 돈이 늘기 때문에 투자를 많이 해서 경제 성장을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국가가 적정 세율을 초과해서 세금을 거둬들이는 경우에만 감세 정책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문제는 적정 세율이 얼마인지 알기 어렵고, 세금을 낮게 매기는 국가에서는 감세 효과도 미미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감세가 근로 및 투자 의욕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이 늘었다고 해서 고스란히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04년 12월 조세연구원은 '감세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입증한 연구는 찾아보기 힘들며, 영향이 있는 경우에도 크기는 매우 작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감세 혜택이 주로 부유층에 집중돼 소득 양극화를 오히려 심화시키고, 장기적으로 정부가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을 줄여 결국 재정 적자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면 세금을 줄여주기보다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1조원을 감세하면 GDP가 0.23조원 증가하는 효과가 있지만 정부 지출이 1조원 확대되면 GDP가 0.4조원 증가한다는 것이다. 감세 효과보다 재정지출 효과가 2~5배 크다는 것은 독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은 감세로 성공했나?

미국에서는 백악관 주인이 어느 당이냐에 따라 조세 정책이 춤을 췄다. 공화당인 레이건과 부시 정부는 세금을 낮췄고, 민주당인 클린턴 정부는 세금을 올렸다. 레이건은 낮춰준 세금만큼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믿었고, 클린턴은 정부의 지나친 빚잔치를 끊기 위해서, 부시는 개인들의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 세율을 조절했다.

일단 레이건 정부는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로, 법인세율을 48%에서 34%로 낮추는 등 대대적인 감세를 단행했다. 소비가 증가하면서 경제가 나아졌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레이건은 '감세→경제 성장→세수 증가→건전재정 유지'라는 선순환을 기대했지만 정부는 눈덩이처럼 쌓이는 빚더미에 앉게 됐다. 재정적자 규모는 레이건 집권 전인 1980년 7천100억달러(GDP 대비 26%)에서 클린턴 정부 첫 해인 1993년말 3조2천500억달러(GDP 대비 50%)로 4.5배 이상 늘었다.

이에 클린턴은 소득세율을 31%에서 39.6%로, 법인세율을 34%에서 35%로 늘렸다. 동시에 저소득층에 대한 세제 지원은 확대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10년에 걸쳐 저인플레·고성장의 장기호황을 누렸고, 1998년부터 연방정부의 재정수지는 흑자로 바뀌었다.

하지만 재정수지 적자는 부시 정부 첫 해인 2001년까지 3년간 지속됐을 뿐이다. 부시는 소득세율을 인하했고, 2010년까지 단계적인 상속세 폐지를 밝혔다. 이로 인해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이 늘고, 소비도 확대되면서 경기가 회복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감세는 고소득층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소득 불균형을 키우고, 정부 재정수지 악화라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감세 효과에 관한 미국 의회 예산처의 분석자료(2004년 8월 발표)를 보자. 소득수준 상위 20%가 60% 가까운 감세 혜택을 가져간 반면, 하위 40% 계층이 받은 혜택은 11.1%에 그쳤다. 감세는 시민들의 지갑을 여는 데 실패했다. 당초 기대했던 430만개 일자리 창출은 160만개에 그쳤다.

◆과연 누구를 위한 감세인가?

우리나라는 세율이 높은 편이 아니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세 세율은 일본, 중국은 물론이고 OECD 평균보다 낮다. 이미 우리나라는 지난 2002년과 2005년 감세를 통해 10~40%이던 소득세율을 8~35%로 낮췄고, 법인세를 최고 28%에서 25%로 내렸다. 소득세는 일본 37%, 중국 45%, OECD 평균 37.3%에 이르며, 법인세 역시 일본과 중국은 30%, OECD 평균은 26.7%로 우리나라보다 높다.

법인세율도 마찬가지. 명목상 최고세율은 25%로 싱가포르(18%), 대만(17.5%)보다 높지만 각종 면세 혜택을 감안한 유효세율은 2005년 기준 자산 규모 5천억원 이상 법인을 놓고 볼 때 13.7% 밖에 안된다. 세금 부담이 커서 기업들이 투자를 못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것이다.

세금을 줄인다고 해서 소비나 투자가 늘어날 지도 불투명하다. 2005년 기준으로 근로소득자 및 자영업자의 절반이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으며, 기업의 34%가 결손 탓에 법인세를 면제받고 있다. 아울러 납세자 중 근로자 63%의 평균세액이 17만5천원에 불과하고, 자영업자의 65%는 평균세액이 31만6천원에 그친다. 세금을 줄여줘도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일본도 1990년대들어 세 차례 감세를 통해 소득세 및 법인세를 대폭 낮췄다. 경기 불황 해소를 위한 조치였지만 의도했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감세로 개인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소비로 다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저축으로 몰렸다. 2000년 일본이 진 전체 빚 규모는 GDP의 133%에 이르게 됐고, 연간 국채이자를 지불하는데만 10조엔 이상 지출했다.

게다가 감세혜택을 많이 받은 고소득층의 경우 해외소비가 많아 국내 내수 진작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소득세 감소효과를 보면, 4인 가구 기준으로 연간 급여가 2천만원인 경우 근로소득세를 5만원 덜 내게 되지만 1억원인 가구는 172만원을 덜 내게 된다. 결국 '강부자' 내각으로 불리던 이번 정부에서 '제대로' 내놓은 부자 정책이라는 것이 감세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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