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지 쿠폰·다양한 할인…재래시장 '마트 뺨치네'

입력 2008-09-04 09:17:11

[재래시장 르네상스] ②서울 시장상인들의 변화

▲ 서울의 재래시장 상인들도 맹렬한 변신을 하고 있었다. 가장 앞선 유통체제가 들어선 서울. 이곳에서 몇몇 재래시장은 변신을 통해 대형소매점도 겁나지 않는 매출 증대를 이루고 있었다. 2005년 이후 매출이 급신장한 서울 광진구 중곡골목시장 전경.
▲ 서울의 재래시장 상인들도 맹렬한 변신을 하고 있었다. 가장 앞선 유통체제가 들어선 서울. 이곳에서 몇몇 재래시장은 변신을 통해 대형소매점도 겁나지 않는 매출 증대를 이루고 있었다. 2005년 이후 매출이 급신장한 서울 광진구 중곡골목시장 전경.
▲ 동네 시장으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배달서비스까지 도입한 서울 관악구 신림1동시장.
▲ 동네 시장으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배달서비스까지 도입한 서울 관악구 신림1동시장.

"차 타고 멀리 갈 필요가 없어요. 우리 동네에서는 시장이 최고예요. 보세요, 깨끗하죠? 지붕이 있으니 비를 맞지 않고, 길도 가지런하게 정리돼 있으니 대형소매점과 비교해도 불편한 점이 없어요. 그리고 물건값이 싸잖아요? 상인들과 대화하면서 물건의 질도 확인할 수 있어 고객이 혼자서 물건의 좋고 나쁨을 판단해야 하는 대형소매점과는 달라요."

지난달 28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중곡제일시장에서 만난 이 동네 주민 박수영(45·여)씨는 시장 칭찬에 침이 말랐다.

기자는 몇시간에 걸쳐 손님들의 흐름을 지켜봤다. 평일 대낮인데도 중곡제일시장은 정말로 붐볐다. 서울시내에서 재래시장 성공모델로 꼽히는 이곳. 시장 상인들은 이젠 대형소매점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서울 재래시장 성공모델로 불리는 관악구 신림1동시장. 이곳 상인들 역시 재래시장의 자존심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성공한 재래시장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골목시장의 부활

전형적인 주택가 골목시장인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시장. 1990년대 중반 대형소매점들이 하나둘씩 들어온데다 급기야 외환위기까지 터지면서 이 시장은 몰락 직전까지 갔다.

정상적으로 영업이 되는 점포는 10곳 중 4곳꼴에 불과했고 빈 점포가 전체의 30%, 문만 열어두고 파리만 날리는 가게가 나머지 30%였다.

2003년.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발버둥 한번만 치고 죽자"는 공감대가 확산됐다. 때마침 재래시장 지원 정책이 나왔고 정부 재정지원금을 포함, 모두 18억원이 투입돼 시장에 아케이드를 덮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아케이드를 덮었지만 손님은 크게 늘지 않았다.

일부 상인들은 "공사비 18억원 중 3억원을 상인들이 돈을 모아 마련했는데 이게 뭐냐"는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5년 초엔 상인들의 동요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이 시장의 상인회 조직인 중곡제일시장 협동조합은 상인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마일리지 쿠폰을 만들어 손님이 산 만큼 돌려주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대기업의 오케이 캐쉬백도 공부했다.

결과는 대성공. 많이 사면 많이 돌려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손님이 급속도로 늘었다. 시장은 단골손님이 많은데 마일리지 쿠폰은 단골손님에게 큰 혜택을 준다는 공감을 고객들이 가진 것이다.

2005년엔 시장 전체 매출이 2003년에 비해 30%나 늘었다. 그 이후에도 매년 평균 5%씩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빈 점포는 거의 사라졌다.

이 시장은 변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달엔 광복절 및 건국 60주년 기념 이벤트를 마련, 할인행사를 하는 등 끊임없는 이벤트를 통해 구매심리를 자극한다. 작은 시장이지만 이벤트를 할 때마다 신문 전단을 3만부나 돌린다. '행사가 알려지면 온다'는 것이 이 시장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 시장 조합은 변호사에다 세무사도 위촉, 상인 내부 서비스부터 확실히 했다. 급전이 필요한 상인들에겐 '마켓론' 제도까지 도입, 연 4.5%의 싼 이자로 돈을 빌려준다. 상인들이 고금리의 돈을 쓰지 않고 제대로 된 법률 및 세무서비스까지 받는다면 시장 경쟁력이 저절로 살아난다는 것이다.

◆상인들이 뭉쳐야 한다

불과 몇년 전까지 전체 시장 점포의 절반 가까이가 흔들거렸던 관악구 신림1동시장. 역시 놀라운 변신을 만들어낸 곳이다.

이 시장도 아케이드 공사를 계기로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역시 싸움의 시작이기도 했다.

공사를 하는 도중 어떤 점포는 지붕을 덮는 데 5개월이 걸렸고, 어떤 점포는 공기가 1개월에 불과했다. 다툼이 일어났다. "내 가게가 더 손해봤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공사 기간 중 손님까지 더 줄었다. 공사판에 손님이 올 리 만무했던 것이다.

"2005년 8월, 아케이드 공사가 준공됐는데 그 달에 제가 상인회 회장이 됐어요. 그런데 그때는 상인들끼리 찬바람이 쌩쌩 불었어요. 그리고 뭘 하려고 하면 뭐든지 부정적이었어요. 제 돈을 들여 '닭고기 파티'를 열었습니다. 상인들이 모이더군요. 단풍놀이도 갔습니다. 하루에 시장을 6바퀴 이상 돌면서 상인들과 대화했습니다. 일단 상인들끼리 친해지고 마음을 열어야 '사업'이 가능하더군요."(상인회 진병호 회장)

상인들끼리 어느 정도 단합이 됐다는 판단이 선 뒤 상인회는 쿠폰도 만들고 시장상품권도 제작했다. 상인들과 마음이 통하니 새 제도 시행에 이견이 없었다.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벤트도 자주 열었다. 기자가 찾은 지난달 28일에도 건국동이 1948년생들에게 장보기용 핸드카를 주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상인회 사무실에는 "저 48년생인데요"라는 손님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상인대학을 열어 상인들 의식을 바꾸려는 노력도 폈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변화한 것이다.

진 회장은 "여름이라고 슬리퍼에 러닝셔츠 바람, 이거 안 됩니다. 하루종일 TV 켜놓는 가게, 이것도 안 됩니다. 손님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 생각만 하는 가게는 손님들이 다시 찾지 않습니다. 우리 시장은 상인들의 협동과 그 과정에서의 변화를 통해 시장의 변신을 일궈냈습니다."

이 시장 역시 빈 점포가 한군데도 없다. 잘되는 가게는 월 5천만원 매출도 나올 만큼 매출이 급신장했다.

최근엔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구입, 배달서비스도 시작했다. '시장은 불편한 곳'이라는 인식을 확 바꾸고 있는 것이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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