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경남 사천

입력 2008-09-04 06:00:00

푸른 창공 푸른 바다 "아" 감탄이 절로

"그 집 며느리는 아예 집을 나가지 않았다." 어느 소설이나 영화의 제목이 아니다. "집 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를 맡으면 돌아온다"는 속담을 살짝 패러디해본 것이다. 며느리로 하여금 집을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어(錢魚)의 계절이 돌아왔다. "봄 도다리, 가을 전어" "가을 전어 머리에는 참깨가 서 말"이라는 말에서 보듯 전어의 참맛을 느끼기에는 가을이 시작되는 이 무렵이 안성맞춤이다.

서부경남 해안에 위치, 북서쪽으로는 진주와 하동에 남동쪽으로는 남해와 고성에 접해있는 사천. 한려해상 관광권의 중심도시인 사천은 전어로 일찍부터 이름이 난 곳이다. 갯벌이 좋기로 소문이 난 사천만에서 잡히는 전어는 육질이 쫄깃쫄깃하고 맛이 유달리 고소하다. 이 곳에서 잡히는 전어는 센 물살을 헤치며 사는데다 풍부한 영양을 섭취한 덕분에 다른 지역의 전어보다 뛰어난 품질을 자랑한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이구동성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을 당연하게 여기며 사천의 명소들은 나중에 둘러보기로 하고 사천 남양동에 있는 ㅁ자연산 횟집을 찾았다. 식당 입구에 있는 수조에는 은빛 비늘을 자랑하는 전어들이 유유하게 헤엄을 치고 있다.

요즘에는 전어를 양식하는 경우도 많지만 이 식당의 전어는 바로 앞에 있는 사천만에서 갓 잡아올린 것. 마침 식당 주인은 배를 타고 전어를 잡으러 나갔고, 주인의 형님인 서원갑 노룡어촌계장이 대구에서 온 취재팀을 반갑게 맞는다. "사천에서 전어는 7월부터 10월까지 잡지요. 추석이 지나면 잡히는 양이 줄어 가격이 훨씬 비싸져요. 사천에서 잡히는 전어는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 전국으로 팔려나갑니다."

전어는 벼가 익을 무렵, 살이 통통하게 오른다. 가을이면 지방질이 가장 많아져 온몸에 기름기가 자르르 흐른다. 가을 전어의 기름 성분은 봄, 겨울철보다 최고 3배나 높다. '깨가 서 말'이란 말도 그래서 생겼다. 그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다. 맛이 너무 좋아, 사는 사람들이 돈(錢)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전어라고 불렀다는 설, 고대 중국의 화폐 모양과 생김새가 비슷해 붙인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다.

전어는 회와 구이, 무침으로 주로 먹는다. 한 접시에 11, 12마리를 주는 전어구이(1만원)와 1kg에 1만원하는 전어회 작은 것(3만원)을 시켰다. 노씨는 "대포항과 인근 횟집은 직접 전어를 잡아 식당에서 팔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푸짐하다"고 자랑했다. 조금 뒤 전어회가 먼저 상에 오른다. 군침이 돌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구이가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일각이 여삼추'라 했던가. 구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유달리 길게 느껴진다. 드디어 구이도 상에 오르고 잠시 사진을 찍은 후 본격적인 전어 맛 탐사가 시작된다.

빼째 썬 전어회부터 맛을 봤다. 향기로운 깻잎으로 전어회와 얇게 썬 마늘, 된장을 쌈을 싸 먹으니 입안 가득 고소한 맛이 감돈다. 처음에는 뼈가 씹혀 거북하기도 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해진다. 전어회 한 쌈에 소주 한 잔이면 세상의 시름을 잊을 수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회에 이어 노릇노릇하게 구운 전어구이를 집어들었다. 전어구이는 대가리와 내장을 발라내면 헛것을 먹은 셈. 일단 손으로 대가리와 꼬리를 잡고 통째로 들고 먹는다. 처음엔 단단한 뼈가 부담스러웠지만 계속 씹으니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한창 살이 올라서인지 두툼한 살점은 입에 착착 감긴다.

"푸른 창공, 푸른 바다 살기좋은 사천!" 인접해 있는 진주와 하동, 남해와 고성 등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사천에도 둘러볼만한 명소들이 많다. 사천을 수식하는 "푸른 창공·푸른 바다"라는 라는 말이 절대로 빈 말이 아니다. 사천에서 자랑하는 '사천8경'을 모두 찾지 못한채 몇곳만 둘러봤지만 "아!"하는 감탄성이 절로 나온다.

▲창선·삼천포대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됐다는 얘기에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육지와 섬, 섬과 섬 사이를 이어주면서 푸른 바다 위에 걸쳐 있는 다리들을 건너는 순간 아름다운 길로 뽑힐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천 대방과 남해 창선을 연결하는 연륙교의 총연장은 3.4km. 사천쪽에서 출발하면 삼천포대교를 시작으로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단항교 등 5개 다리를 건너게 된다. 5개 다리의 모양도 모두 달라 국내 유일의 '교량 전시장'으로도 일컬어진다. 사천8경 가운데 1경으로 꼽히고 있다. 야간에는 다리에 조명을 비춰 푸른 바다와 빛이 멋들어진 조화를 이루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남일대해수욕장·코끼리바위

신라 말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이 남녘 땅에서 제일의 경치라고 해서 '남일대'란 이름을 붙였다. 서부경남에서 조개껍데기 모래 해수욕장으로는 유일하다. 다소 철이 지났지만 남일대해수욕장의 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바닥이 훤이 보일 정도로 물은 맑고, 둥근 모양의 해안선은 곡선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 명성처럼 모래는 부드럽기 그지 없다. 남일대해수욕장에서 왼편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수십여m를 가면 코끼리바위가 보인다. 코끼리가 바다에 코를 박고 물을 먹는 듯한 형상이다. 사천3경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비토섬

사천만을 가로지르는 사천대교를 지나 서포면으로 접어든다. 비토섬을 찾아가는 길. 연륙교인 비토교를 건너 비토섬에 닿은 후 섬 동쪽 끝에 있는 월등도를 바라보는 곳에 차를 세운다. 월등도와 그 옆으로 거북섬이 보인다. 그 뒷편에는 토끼섬과 목섬이 있다. 이곳은 토끼와 거북, 용왕이 등장하는 '별주부전'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 한눈에 보기에도 거북섬은 거북을 빼닮았다.

아주 먼 옛날 서포면 비토리에는 꾀 많은 토끼부부가 살았다. 어느 봄날 남해바다 용왕의 사자인 별주부(거북)가 토끼부부를 찾아왔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줄거리와 같다. 거북의 감언이설에 속은 토끼는 용궁에 따라갔다 간을 빼앗겨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간을 두고왔다는 거짓말로 기지를 발휘, 육지로 돌아왔다.

비토섬의 전설은 여기에서 더 이어진다. 거북의 등을 타고 육지로 돌아오던 토끼는 월등도 부근에 이르러 바다에 비친 섬을 보고 뛰어내렸다 물에 빠져 죽어 토끼섬이 되었다. 토끼를 놓친 거북이는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곳에서 섬이 되었으니 바로 거북섬이란 것. 남편을 용궁으로 떠나보낸 아내 토끼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목이 빠지게 남편 오기를 기다리다 바위 끝에서 떨어져 죽어 목섬이 되었다. 비토의 지명 유래 또한 토끼가 날아가는 형태라 해서 날비(飛), 토끼토(兎)자를 써 비토라 부르고 있다. 비토섬 갯벌은 육상과 해상의 생태계 완충작용은 물론 자연생태 체험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비토섬 갯벌은 사천8경으로 꼽히고 있다.

▲가는 길=대구에서 사천은 심리적으로는 먼 곳으로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멀지 않다. 구마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대구에서 2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구마고속도로로를 타고 마산방면으로 가다 칠원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진주를 지나 사천나들목에서 내리면 된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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