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를 이루다]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유통관리과 최청순 원산지조사계장

입력 2008-09-04 06:00:00

얼마전 찾은 경북 북부의 한 식당. 갈비탕으로 이름 난 그 집의 메뉴판을 보는 순간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갈비탕의 육수는 국내산 한우로 만들었고, 갈비는 호주산 소라는 원산지 표시 때문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Made In ~'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이 들어간 외국에서 들여온 먹을 거리들이 잇따라 적발되는 것도 원산지에 대한 사람들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경북지원 유통관리과 최청순(52) 원산지조사계장. 수입농산물의 부정 유통을 막기 위한 원산지 단속업무에 젊음을 바친 주인공이다. 경산이 고향인 최 계장은 1986년 국립농산물검사소에 들어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2년 동안 원산지 단속 일을 했다. '얼굴이 너무 알려져' 단속에 지장을 줄 것을 우려, 잠시 현장을 떠났다가 지난 7월부터 원산지조사계장을 맡아 다시 일선에 복귀했다.

현재 경북지원에서 원산지 표시관리 단속업무를 하는 인력은 158명. 최 계장이 직접 이끄는 7명으로 구성된 기동단속반과 함께 17개 출장소마다 단속업무를 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 이들 가운데 최 계장은 그 경력과 실력에서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히고 있다. 이를 잘 입증하는 것이 최근 그가 적발한 칠레산 돼지고기의 국산둔갑사건. "이름만 대더라도 알 수 있는 장례식장에 문상을 갔다가 칠레산 돼지고기와 국내산 돼지고기를 교묘하게 섞어 만든 수육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칠레와 같은 수입산 돼지고기의 껍질은 색깔이 진한 반면 국내산은 연하지요. 소비자들은 구분하기 어렵지만 전문가인 저희 단속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지요. 장례식장에 돼지고기를 공급한 업자는 칠레산과 국내산 돼지고기를 폭 3,4cm 정도씩 섞어 덩어리로 만들어 수육으로 판매를 했더군요. 공급한 사람으로부터 실토를 받았는데 이렇게 판매한 양이 무려 10t이나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원산지 표시관리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93년부터. 그 이듬 해인 94년부터 최 계장은 단속 업무에 뛰어들었다. "원산지 표시관리 제도는 농업인 등 생산자는 물론 소비자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보면 되지요. 수입농산물이 국산으로 둔갑, 판칠 경우 생산자들은 판로가 막히거나 제값을 못받아 고통을 겪고,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물론 건강에 위협을 받는 등 문제가 매우 심각해집니다. 그렇기에 단속을 하는 저희 모두가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지요." 원산지 표시관리 제도를 맡고 있는 농산물품질관리원에게는 97년부터 사법권이 주어졌다. 위반 행위를 직접 수사해 검찰에 송치할 수 있는 것.

먹을 거리의 개방 폭이 넓어짐에 따라 값싼 외국 농산물을 수입해 국산으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등 소비자와 생산자를 우롱하는 부정유통 사례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실정. "가을이나 겨울 등 국내산 공급이 줄어들면 수입산의 국산 둔갑이 기승을 부리는 마늘 경우 kg당 국내산은 3천원, 수입산은 2천원 정도하지요. 수입산과 국내산의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는 탓에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속여 판매한다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지요. 이 같은 이유로 수입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하거나 수입산이라는 것을 표시하지 않는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최 계장 등 단속반이 출동하는 곳은 대형유통업소와 재래시장은 물론 수입산을 소규모로 포장하는 수입업자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식당에도 원산지 표시관리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자주 들르고 있다. 두달 동안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한 식당 15곳, 표시를 하지 않은 식당 6곳이 적발됐다. "첩보를 받기도 하고 수입산의 유통경로를 파악, 그 경로를 추적하기도 하지요. 한달에 보름 정도씩 현장을 누빌 정도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수입산의 국내산 둔갑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만큼 농산물품질관리원의 단속방법도 기민해질 수밖에 없다. "단속을 하는 데 가장 어려운 품목이 고추와 마늘이지요. 고추를 빻아 가루로 만들거나 마늘을 찧어 둔갑시킬 경우 적발을 하기가 만만치 않아요. 둔갑시키는 물량이 많아지고 국내산과 수입산을 섞어 팔거나 주말이나 퇴근시간에 판매하는 등 수법이 지능화하는 것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단속을 하는 업무이다보니 나름대로의 고충과 애환이 없을 수 없다. "영세한 상인에게 수백만원에 이르는 과태료를 매기려면 저도 마음이 아프지요. 그렇지만 법을 지키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할 수밖에 없어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단속에서 적발된 어떤 고기 판매점 업주는 칼을 도마 위에 내려치며 위협을 하고 반발하는 경우도 있지요."

원산지표시관리제도의 완전 정착을 위해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첨단 단속기법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원산지허위표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미표시 경우에는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육안으로 단속이 어려운 참깨'고춧가루'마늘 등에 대해서는 유전자 분석 또는 근적외선분광분석(NIRS)을 실시하고 있다. 최 계장은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첨단 단속방법을 동원하는 것과 더불어 소비자들 모두가 원산지 표시관리 제도의 모니터가 돼 입체적인 그물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와 함께 업자들의 양심 지키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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