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쿤스트 하우스

입력 2008-09-04 06:00:00

'예술의 상상력이 사회를 깨우고 건축이 도시를 세상 바깥으로 인도한 그라츠. 이제 이 도시는 빈과 잘츠부르크의 영광에 가리지 않는다.'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곳. 4, 5년 전 오스트리아의 작은 도시에 건립된 쿤스트 하우스(미술관)다.

영국의 건축가 피터 쿡과 콜린 푸르니에가 설계했고 500억원의 예산으로 건립되었다. 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액수로 지어진 건물들이 세계 곳곳에 즐비하지만 쿤스트 하우스의 유명세는 돋보인다. 이런 게 랜드마크다.

언론이 전하는 건물 외형에 대한 묘사는 이렇다. '우주선처럼 보이는 4층짜리 유선형 건물' '중세풍의 빨간 지붕 사이로 검푸른 연체동물이 촉수를 내밀고 기어가는 듯하다.' 곁들여진 사진을 보니 과연 기이하면서도 아름답다.

돌이켜보면 아방가르드 건축물들이 일반화되기 전에 먼저 수용되고 구체화되는 공간은 예술과 관련된 곳들이다. 관공서나 일반 건축물들은 어림없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예술의 사회적 존재 이유를 엿 볼 수 있다.

쿤스트 하우스 큐레이터인 아담 부라크는 "소장품 없이 다양한 현대미술의 실험장으로 자유롭게 운영될 것"이며 "문화공간을 통해 계층 간 사회 통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강으로 갈라진 중상류·서민층 주거지역 중간에 미술관으로 문화의 다리를 놓은 것이다.

부러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라츠 시민은 물론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등 외국의 수많은 관광객까지 몰려드는 도시의 명소가 되었다. 인구 22만의 도시가 이뤄 낸 쾌거다. 이는 그라츠 시당국과 사회 구성원이 문화가 곧 '소통'이라는 통찰을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로 21세기에 지어진 미술관으로서 밖으로는 세계의 시선을 모았고 안으로는 시민의 화합을 이루는 가교가 되었다. 덤으로 실질적 이익까지 생겼으니 개념 있는 문화행정이 아닌가!

지난 몇 해 논란거리로 지역 매체에 오르내렸던 대구시립미술관이 수성구 언저리 산에 더디게 건설되고 있다. 쿤스트 하우스보다 규모도 크고 예산도 더 많지만 시민의 참여나 이해는 전무하다. 쿤스트 하우스도 처음엔 시민들의 반대가 심했다 한다. 그렇다고 결과도 같을까? 미술관이 지닌 독창성과 예술성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대구시립미술관에는 보이지 않는다. 우선은 모양새부터 세계 유수의 미술관처럼 예술의 존재이유를 상기시키면서 시민의 참여와 공감을 유도할 스토리가 없다는 점에 의견이 일치한다. 완공된 미술관이 대구의 한계를 상징하고 혈세나 낭비한다는 힐난에 놓인다면 그 불행은 시민 모두의 것이 된다.

김창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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