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바꿔바꿔' 변화 물결…손님 발길 '북적북적'

입력 2008-09-03 09:22:44

[재래시장 르네상스] ①시장은 죽지 않았다

▲ 재래시장이 새로운 중흥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상인들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다. 손님들이 부쩍 늘어난 대구 서문시장.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 재래시장이 새로운 중흥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상인들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다. 손님들이 부쩍 늘어난 대구 서문시장.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대형소매점들이 맹렬한 기세로 점포를 늘려갈 때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습니다. "이제 재래시장은 죽었다"고 말입니다.

그런 얘기가 나온 지가 벌써 1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대구 첫 대형소매점으로서 엄청난 인파를 불러모았던 홈플러스 대구점 개점이 1997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재래시장은 참으로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재래시장은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재래시장은 새로운 중흥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최근 3년간 대구시내 재래시장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2006년 102곳이었던 대구시내 등록시장이 올해는 110곳입니다. 대형소매점들이 '훅 불면' 넘어갈 것 같던 재래시장,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매일신문은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맞아 5회에 걸쳐 재래시장을 조명해봤습니다. 우리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잘된다는 시장도 가보고, 이웃나라 일본도 돌아봤습니다.

재래시장이 살아나야 그 동네에 사람이 넘치고, 돈도 머뭅니다. 재래시장 살리기는 동네를 살리고, 나아가서 우리 지역 곳간을 지켜내는 일입니다. 올 추석 장보기, 재래시장에서 해보시면 어떨까요?

대구시내 재래시장은 '쉭쉭' 바람소리가 날 만큼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상인들의 '자신감 회복'. 상인들은 "바꿔보니 손님이 오더라"고 입을 모았다.

◆대형시장, 이름값 회복 중

대구 얼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문시장.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이곳도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밀어닥친 '유통공룡'들의 십자포화 앞에 심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2008년 서문시장은 더 이상 '종이 호랑이'가 아니다. 아케이드를 새로 만들어 쇼핑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서문시장 주차빌딩에 들어올 때 주차권을 뽑으려고 차창 밖으로 손내밀 필요도 없다. 자동으로 번호판을 인식해 나갈 때 주차요금을 정산한다.

시장 안내소도 설치돼 있다. 모르고 찾아오는 사람도 서문시장 쇼핑정보를 일단 공부한 뒤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서문시장에서 산 물건들은 택배서비스를 통해 전국으로 배달이 가능하다. 낑낑거리며 물건을 들고다니는 수고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

여러 가지 편의성이 좋아졌지만 서문시장은 저렴한 가격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서문시장상가연합회 최태경 회장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노력해도 안 된다'는 비관적 인식이 많았지만 아케이드 공사 등 여러 가지 환경 변화 이후 손님이 눈에 보일 정도로 늘어나자 시장 상인들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앞으로 쿠폰제 등 다양한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 서문시장이 정말 즐거운 쇼핑장소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했다.

칠성시장도 주차관제 시스템을 도입해 시장 이용객들에게 주차요금의 50%를 감면해주는 등 약점을 하나씩 극복하고 있다. 이곳 역시 지하철 1호선이 통과하는데다 주차 편의성까지 커져 고객들 발걸음이 갈수록 늘고 있다.

◆동네시장, "우리도 있다"

대구 달서구 달구벌대로변 서남신시장. 인근에 대형소매점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이곳도 지난 몇년간 심한 타격을 받아왔다.

하지만 상인들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모진 마음을 먹었고 "시장 환경부터 바꿔보자"는 결심을 했다.

중앙 및 지방정부 재정 지원금을 받아 지난달 18일 아케이드 공사를 끝냈다. 300m 구간의 뻥 뚫린 하늘이 지붕으로 덮였다.

아케이드 공사 이후 호기심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 이를 놓칠세라 이 시장은 이달 적립식카드도 만든다. 유명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하는 것처럼 구매 실적에 따라 카드 포인트 적립은 물론 할인도 가능하게 했고 현금영수증 기능도 넣었다. 특히 이 시장에서 쌓은 포인트(GB카드 이용)는 전국 어느 곳에서도 통용되도록 만들었다.

허동구 상인연합회 회장은 "적립식카드는 전국에서 우리 시장이 처음"이라며 "시장이 변하려면 정말 제대로 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장을 바꿔나가고 있으며 고객쉼터, 놀이방 등 고객편의시설도 늘려 시장의 위력을 한번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또 "상인들부터 변해야 한다"며 "자체 상인대학을 만들어 우리 스스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반성하면서 개선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 동구 효목2동 동구시장. 역시 지난해 6월 아케이드를 만든 뒤 획기적 변화를 겪었다.

10곳 중 2곳꼴로 있었던 빈 점포. 하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손님이 늘어나자 이달 현재 단 한곳의 빈 점포도 없다.

이곳 상인회는 '시장의 변화' 이후 각 점포당 매출이 평균 30% 이상 뛴 것으로 집계했다. 당연히 너도나도 들어오려 했고 빈 점포는 금세 동났다. 상인회 강정석 회장은 "아케이드 공사 이후 전 품목 원산지 표시제, 가격 표시제 등 재래시장에서는 하기 힘든 것을 상인들이 모두 합심해 이뤄냈다"며 "마침내 대구시내에서 처음으로 모범시장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그동안의 노력을 주민들이 먼저 알아주고 시장을 찾아줬다"고 말했다.

대구시 손혜경 재래시장 환경개선담당은 "대구사람들은 보수적이라는 인식을 깨고 시장 상인들이 굉장히 빨리 변하고 있다"며 "그들의 의지와 노력이 대구시내 많은 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 "자신감 회복 중요" 중기청 시장경영지원센터 김유오 실장

"무엇보다 시장 사람들의 자신감 회복이 중요합니다. '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아케이드 설치 같은 시장 현대화사업이 일단 시장 사람들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 상권개발연구실 김유오 실장은 "시장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정부 정책으로 시장에 본격적인 재정지원이 이뤄진 지가 몇년 안 됩니다. 그래서 아직 제대로 된 수확이 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8천억원 정도가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돈이 들어갈 텐데 시간이 가면서 효과가 드러날 것으로 봅니다."

그는 재래시장 문제도 지방이 더 심각하다고 했다. 사람이 몰리는 서울과 달리 지방 인구의 감소가 시장에 가장 큰 직격탄을 날렸고, 지방도시의 구도심 개발이 어려워지면서 구도심 시장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입니다. 시장 상인들이 '정말 한번 해보자'는 의지를 갖고 단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있어야 재정지원 효과도 발휘됩니다. 속초 중앙시장은 동해안 관광지답게 여름이 성수기였습니다. 당연히 '겨울에는 뭐 먹고 사느냐'는 자조 섞인 한숨이 나왔습니다. 이곳 상인들은 푸념만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루미나리에를 만들어 겨울에도 아름다운 조명이 드리워진 바다를 보러오는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야시장도 열었습니다. 상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시장이 바뀝니다."

그는 시장 상인들이 '지킬 것'과 '버릴 것'을 잘 구분해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충남 서산의 한 시장은 위치적 한계를 체감하고 자리를 옮겨 성공사례를 낳았습니다. 시장 성장에 방해가 되는 '버릴 것'이 있다면 비록 시장터라도 과감히 버렸다는 것이지요."

그는 대구경북의 시장도 장점이 많으므로 더 큰 변화를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