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25)프리다(Frida,2002)

입력 2008-08-30 06:00:00

프리다 칼로. 75ⅹ52. 종이위에 혼합재료. 2008
프리다 칼로. 75ⅹ52. 종이위에 혼합재료. 2008

1925년 9월 17일 오후. 작은 체구에 짙은 눈썹의 18세 소녀가 남자친구와 버스에 오른다.

따스한 햇살과 흙담 위의 꽃과 풀들이 한없이 신기할 나이. 사랑의 향기가 가슴 속에 충만한 이 소녀는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면서 온몸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한다.

버스 손잡이 쇠파이프가 몸 한복판을 관통했다. 옆가슴을 뚫고 들어와 골반을 통해 질을 뚫고 허벅지로 나왔다. 의사들은 세 군데의 요추 골절, 쇄골 골절, 제3, 4 늑골 골절, 세 군데의 골반 골절, 어깨뼈 탈구, 그리고 12군데나 골절된 오른쪽 다리와 비틀리고 짓이겨진 오른발을 발견했다.

그녀의 몸은 완전히 망가졌다. 석고 틀 속에 꼼짝없이 갇혀 지냈고, 퇴원 후에도 학교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연필을 들고 자신을 가두고 있는 깁스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은 그녀의 고통을 잠재우는 모르핀이었고,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날개였다.

그녀가 바로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다. 그날 사고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9년 동안 35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또 버림받으며 살았다. 영혼과 몸 모두 가시가 박힌 고통스런 삶이었다.

'프리다'는 헤이든 헤레라 원작 '프리다: 프리다 칼로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여성감독 줄리 테이머가 멕시코 출신의 미녀 배우 셀마 헤이엑을 기용해 만든 전기영화다.

"나는 소망하다. 고통을 품고, 망가진 척추로, 걷지도 못하고, 드넓은 길에서, 멀리 본다. 강철로 된 생명을 부지한다."

피카소, 뒤샹, 미로, 칸딘스키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과 친분을 가진 그녀는 망명온 공산주의자 트로츠키의 연인이자 열렬한 스탈린주의자, 천재 벽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 알려진 프리다. 그녀는 기구한 운명의 여성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의 우상으로 통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는 남편의 여성편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여인잔혹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두 발이 왜 필요하겠는가. 나에게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면."

연약한 몸은 가둬졌고, 뜨거운 가슴마저 풀어헤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그녀는 원색적이며, 초현실주의적인 잔혹성을 붓에 찍어 캔버스에 그렸다. 배를 갈라 태아를 끄집어내는 그림은 여성의 몸으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한계를, 수많은 자화상은 자신의 정체성에 물음표를 던진 내면의 표현이었다.

시인 이규리는 '죽어서 다시는 눕고 싶지 않아'라는 시로 프리다의 삶의 굴곡을 대변하고 있다.

'척추 대신 갈아 끼운 쇠파이프'는 프리다의 불운한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번의 사고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온 그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대목이다. 그로 인해 피어나는 독한 초현실주의의 꽃은 마치 가시 박힌 면류관처럼 강렬하다.

하필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남자의 이름이 디에고(Diego)일까. 시인은 '디 에고'(The ego)로 뒤틀고 있다. 디에고는 프리다의 또 다른 자아(에고), 그녀의 사랑은 결국 자아의 상실, 또는 투영일 테니까.

죽어서 훨씬 자유로워질 그녀의 고통을 '눕고 싶지 않다'라는 절절한 심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더 이상 머리통만한 아이를 사산하지 않고, 더 이상 치사한 사랑이 부서질까 애면글면하지 않고, 더 이상 못 박히지 않는··· .

화가 권기철은 프리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화려한 색채는 프리다의 화려한(?) 상처를 보여주는 것이다. 목걸이처럼 척추 지지대를 달고, 얼굴에는 뿌려놓을 것처럼 못이 박혀 있다. 멕시코 특유의 강렬한 색깔로 한 시대를 풍미한 초현실주의 여성 화가를 그렸다.

틀을 부수고 진정으로 자유를 갈구한 프리다의 눈물이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죽어서 다시는 눕고 싶지 않아

못을 온몸에 박은 여자가 있다

움직이면 치사한 사랑 부서질까, 누워서

어른 머리통만한 아이를 사산하고, 누워서

불륜하는 디에고를 죄다 보고, 누워서

심장을 싹둑 자르고

전차 손잡이용 쇠파이프를 척추 대신 갈아 끼운 채

불운이 절걱대며 걸어간다

"내 인생에 두 가지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전차, 하나는 당신, 당신이 더 나빴다."

무수히 배반한, 배반할 사랑 안에서 그녀가 피우는

독한 초현실주의의 꽃, 꽃

죽어서 다시는 눕고 싶지 않아,

얼마나 지독했길래

'단 한 번의 외출인 죽음이 즐겁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디에고(Diego)여,

원수 같은 이승의 디 에고(The ego)여,

화가·권기철 시인·이규리

▨ 프리다(Frida, 2002)

감독:줄리 테이머

출연:셀마 헤이엑, 알프리도 몰리나

러닝타임:120분

줄거리: 1922년 멕시코. 사춘기 소녀 프리다는 버스와 전차가 부딪치며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는다. 첫사랑의 실연과 함께 침대에 누워 두 팔만을 간신히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고통 속에서 깁스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몇 년 후, 프리다는 성숙한 숙녀의 모습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인 디에고를 찾아가 자신의 그림을 평가해 달라고 요구한다. 직접 내려와서 보라는 당돌한 그녀의 모습에 묘한 매력을 느낀 디에고는, 결국 프리다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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