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 '잃어버린 10년, 준비된 10년'

입력 2008-08-26 07:33:22

최근 웅진그룹 계열의 웅진폴리실리콘사가 2012년까지 상주 청리공단에 1조원을 투자, 태양광발전의 핵심원료인 폴리실리콘 제조 공장을 설립기로 했다. 경북도와 상주시의 쾌거다. 이 회사는 지역과 특별한 연고가 없었다. 경쟁지역이었던 충남은 웅진그룹의 모태가 된 곳이고 경기도는 부지 면적과 입지조건에서 상주시보다 앞섰다. 이같이 불리한 여건에도 유치를 성사시킨 경북도와 상주시에 박수를 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주 청리공단은 부지조성 공사가 끝나갈 무렵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투자가 안 돼 빈 터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웅진그룹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대규모 공단이 10여년간 애물단지였지만 역설적으로 투자만을 기다린 '준비된 땅'이었다.

웅진그룹은 한때 대구에도 관심을 가졌다. 대구시는 유치를 위해 달성군 쪽에 입주부지를 제안했다. 웅진 관계자들이 부지를 현장조사했지만 필요한 33만㎡(10만평)에 훨씬 못 미치고 반듯한 모양이 나오지 않아 포기했다. 시는 '대박'을 눈앞에서 놓친 격이었다.

반도체 장비회사인 주성엔지니어링도 박막형 태양광셀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지난 상반기에 대구시 관계자와 수차례 접촉했다는 후문이다. 이 회사 CEO는 경북 고령이 고향으로 대구지역 투자에 상당한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달성2차공단 등에 부지를 제안했지만 최대 가용면적이 8만2천여㎡(2만5천평)에 불과해 주성엔지니어링은 다른 곳으로 투자처를 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준비된 땅'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구시 산업입지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사활을 걸고 투자유치 경쟁을 벌이는데 산업용지 부족으로 눈앞에서 '대어'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산업용지 준비는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이 분야에 관한 한 지난 10년 동안 '잃어버린 세월'이었다"고 아쉬워했다.

대구시에는 성서5차산업단지가 조성되고 있고 달성군에 대규모 국가과학산업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이 공단들이 조성되면 산업용지난에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하지만 개발일정상 2011년 이후에나 기업들이 입주할 수 있다. 또 이들 공단이 본격적으로 기업유치에 나설 2010년을 전후로 구미5국가공단, 포항국가공단 등 경북은 물론 경남도에서도 3천300여만㎡(1천여만평)의 공단이 조성돼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여야 한다. '준비된 땅'을 갖고도 투자유치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대구시와 정치권 일각에서 국가산단 등에 최소 수십여개의 협력업체군을 동반유치할 수 있는 대기업, 그것도 신재생에너지, 로봇 등 첨단업종을 유치하기 위해 뛰고 있다. 이런 유치기업들은 다른 지역에서도 사활을 걸고 유치하려는 업종이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보다 더 좋은 조건, 더 좋은 기업환경을 내걸고 또 기업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견인책이 필요하다.

'잃어버린 10년'을 단절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준비된 10년'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을 향해 지역 리더들의 지도력과 전문가 그룹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이춘수(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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