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수술실 단상

입력 2008-08-25 06:00:00

옷을 벗는다. 수술복으로 갈아입는다. 순간 '나'라는 인간의 알맹이는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술자'란 껍데기만 남아 나를 대신한다. 어정어정 걸어 수술실 안으로 들어간다. 수술대에 사물화한 개체가 누워있다. 환자 머릿속을 들여다 본 방사선 사진들이 컴퓨터 화면에 떠있다. 사진들 속에도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술을 받을 대상의 뇌와 병소만 보일 뿐이다. 가슴이 무척 메마름을 느낀다. 말라버린 칡뿌리를 씹는 맛이다.

모든 얼굴에서 화장이 지워져 있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는 물론, 간호사들 얼굴에서도 화장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득 그들의 얼굴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꾸며진 사물에 익숙해진 내 눈의 잘못된 버릇이라고 치부한다. 진실된 모습을 수술실에서 한 번씩 확인함을 감사한다.

수술 부위만 환하고 주위는 어둠에 싸여 있다. 감추어둔 속을 내보인다.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않던 속이다. 그곳을 더듬는 내 손은 면도날 칼날을 쓰다듬듯 조심스럽다. 외줄 타는 남사당패의 표정이다. 감정에 휩싸이면 외줄에서 떨어지듯 나도 내 손을 벤다. 그곳에서 흐르는 피는 환자와 가족의 삶을 붉게 물들일 수도 있다.

이제 원죄에 대한 신의 결정을 기다린다. 병소를 들어내면서 부디 치유되는 병소이기를 빈다. 그러나 신은 언제나 어머니 같지만은 않다. 한 번씩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를 닮기도 한다. 상고를 해도 자꾸만 사형을 선고하는 고집불통의 재판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환자도, 그 가족도, 그리고 나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게 만들기도 한다.

환자가 마취에서 깬다. 저 세상을 소풍하듯 한 번 획 둘러본 기분이다. 어떻게 갔다가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삶이란 문득 이런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지내왔는지 아련한데 이렇게 늙어 병들어 수술실에 누워있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대로 서 있는데 시간이 말없이 흘러간 것이다. 생각은 아직 젊은데 몸은 이미 나이 들어 병들어 있는 것이다.

수술실은 따뜻한 심장을 들어낸 인간들이 타인의 상한 가슴을 되돌려 주는 곳이다. 화장기 없는 진실한 표정으로 타인의 속을 들여다보면서 고민하고, 떨고, 땀도 흘리는 곳이다. 치유되지 않는 질환을 발견했을 때 원죄에 대한 신의 결정을 원망하면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군상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욕망을 털고, 가식을 털고, 진실한 삶을 살라고 가르쳐주는 교회도 되고, 성당도 되고, 그리고 절도 되는 그런 곳이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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