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베이징] 감동 못준 체조 갈라쇼

입력 2008-08-21 08:49:34

남자 체조 평행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중국의 체조 스타 리샤오펑은 연기 도중 평행봉에 걸터앉아 일부러 힘든 표정을 지었다. 정규 경기라면 상식 밖의 일이었지만 체조 갈라쇼 도중이어서 관중들은 마음놓고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한 숨을 돌린 리샤오펑은 다시 연기를 펼친 뒤 관중들의 환호 뒤로 사라졌다.

체조 경기가 막을 내린 20일 베이징 국립실내체육관에서는 체조 갈라쇼가 열렸다. 올림픽에서 체조 갈라쇼가 처음 펼쳐진 것은 1996년의 애틀란타. 메달에 대한 부담을 벗은 출전 선수들이 개성 넘치는 동작으로 관중과 함께 즐기는 무대가 되면서 인기가 폭발, 이후 올림픽에서 단골 팬서비스로 정착했다.

하지만 1시간 넘게 이어진 이날 갈라쇼 공연은 아쉬움이 더 많았다. 출전 선수들 위주로 꾸며진 무대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일부 중국 선수들의 성의 없는 연기도 실망스러웠다.

리듬 체조와 트램폴린 선수 외에 이날 공연에 나선 체조 선수는 모두 18명. 그 중 중국 선수는 9명이나 됐다. 중국이 미국(금 2, 은 6, 동 2)을 제치고 남녀 통틀어 금 9, 은 1, 동 4개로 메달 14개를 가져가며 체조 최강국임을 입증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경기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 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도 기대됐다.

하지만 공연 후반부에 등장한 리샤오펑과 링 금메달리스트 첸이빙의 연기 정도만 볼만 했을 뿐. 여자 이단평행봉 금메달의 주인공 허키신이 10초도 안 되는 시간에 간단한 동작만 보여준 뒤 퇴장하는 등 나머지 중국 선수들의 연기에서는 관중들을 위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반면 다른 나라 선수들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더욱 빛났다. 철봉 동메달리스트 파비안 함뷔엔(독일)은 드가체프(등 뒤로 철봉을 넘어 다시 잡는 기술) 동작을 다섯 번 연속으로 성공시켰고 은메달을 딴 조나단 호튼(미국) 역시 고난도의 연속 공중 돌기로 관중들의 탄성과 우레 같은 박수를 이끌어냈다. 21일부터 정규 경기를 하는 리듬 체조 선수들의 안무도 화려했다.

마지막 무대 인사에서도 체조 선수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체조 갈라쇼임에도 사이사이에 등장했던 중국 무술 공연팀, 기예를 선보인 팀, 아카펠라 공연 팀 등이 쇼 진행자와 함께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고 마지막에 등장한 체조 선수들은 무대 한쪽에 멋쩍게 서 있어야 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 선수들이 관중들과 함께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마카레나 댄스를 추던 모습, 점퍼를 따로 챙겨 입고 멋진 쇼맨십을 선보였던 러시아의 체조 스타 알렉세이 네모프의 공연 등에 버금가는 연기가 이어지길 기대하기엔 무리였을까. 자국 영웅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자 가득 모인 중국 관중들 앞에서 보여준 중국 선수들의 연기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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