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명화와 공중화장실

입력 2008-08-11 08:27:02

가구를 새로 바꾸거나 집안을 수리하는 일은 혼례나 甲宴(갑연) 등 큰 잔치를 앞두고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가족 분위기 또한 잠시나마 一新(일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모습은 비단 家事(가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살림이나 국가경영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지금 한창 하계올림픽 경기를 치르고 있는 중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은 세계만방에 21세기 새로운 문명국가를 선보이고자 한다.

하긴 우리도 그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의 일상적 문화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획기적 계기로 작용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대회 또한 비슷한 기여를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국제적 행사 유치가 잦아질수록, 그리고 그것이 점차 지방도시로 확산될수록, 문화적 관심은 삶의 보다 미세한 영역에까지 파고들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중화장실 문화가 아닐까 싶다.

대소변으로부터 자유로운 동물은 없다. 그 중에서도 인간은 화장실을 문화로 만든 거의 유일한 존재다. 舊約(구약) 신명기에 배설물은 땅에 묻으라고 한 것이 문헌상의 기원인지는 몰라도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인간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라고 썼다. 게다가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늘어나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공중화장실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편리하고 청결하고 안전한 공중화장실이야말로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문명의 척도다.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는 공중화장실 선진국이 되었다. 한참 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가장 불편한 경험으로 화장실 이용을 꼽던 일은 이제 지나간 추억이 되었다. 한국의 공중화장실 수준은 일부 외신이 '화장실 혁명'(Toilet Revolution)이라고 극찬할 정도가 되었고 그 노하우는 한류 상품이 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기도 하다. 작년 가을에는 서울에서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총회가 열리기도 했다.

공중화장실의 선진화는 우선 화장실 건축 자체가 달라진 것에서 눈에 띈다. 가령 경기도 수원월드컵 경기장 바깥에는 축구공 모양의 화장실이 있으며, 남양주 화도 하수처리장 내에는 화장실이 그랜드 피아노 모습을 하고 있다. 경북 김천 직지문화공원 안의 공중화장실은 원형 갓 형태다. 이처럼 크게 특이하지는 않더라도 외관상 별로 화장실 같지 않은 화장실 건물은 이제 도처에 즐비하다. 도시미관 향상에 톡톡히 기여하는 공중화장실을 보면 과연 화장실 문화라 부를 만하다.

공중화장실 선진화의 또 다른 방향은 내부 인테리어다. 그런데 외부와는 달리 화장실 안쪽 사정에 대해서는 문화라는 말이 가끔은 아깝다. 지금 현재 공중화장실의 내부 장식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造花(조화)와 名畵(명화)다. 生花(생화)를 쓰지 않는, 혹은 쓸 수 없는 사정은 무난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림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지하철 등에 있는 공중화장실에 천편일률적으로 걸려있는 고흐의 '해바라기'나 밀레의 '만종',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혹은 모네의 '수련' 따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 세계적 '명화'의 경우 작품의 질을 더 이상 검증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쉽게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명화라고 해서 모든 장소에 획일적으로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그것은 명화에 대한 모독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화장실 그림들은 대개 1만원 내외의 값싼 복사화이다. 말하자면 작품 특유의 혼과 기, 혹은 아우라가 사라진 '죽은 그림'인 것이다. 이런 복사판 싸구려 그림으로 공중화장실을 도배한다면 우리는 화장실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예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역시 화장실 수준으로 취급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값비싼 진짜 그림을 어떻게 사서 걸겠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가짜 그림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결코 정답이나 최선은 아니다. 그림이 꼭 필요하다면 공중화장실을 죽은 명화의 전당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生畵(생화)' 전시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이미 그렇게 하는 곳을 더러 보았기에 훨씬 살갑고 신선했다. 아니면 아예 그림을 붙이지 않고 그곳을 차라리 깨끗한 빈 공간으로 남겨두는 방법도 있다. 가짜 세계명화를 덕지덕지 힘겹게 붙들고 서 있는 공중화장실 벽면을 그냥 쉬게 놔두는 것 말이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빈칸도 작품이고 여백도 예술이다.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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